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 朴정부 전철 밟나···'공(空)'론화 전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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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도 미흡한데···참관 제도도 구색맞추기 
전문가그룹 11명 보이콧···"재검토 초기부터 날림 진행"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박근혜 정부에서 수립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했지만 8개월이 지난 현재 파행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주 전문가그룹 소속 위원 11명이 재검토위 졸속 진행을 이유로 보이콧을 공식 선언한 가운데 박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열린 17차 재검토위 회의에서는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의 의견수렴범위인 '경주시' 결정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당 안건에 대한 논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당초 전국공론화 이후 지역공론화를 실시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경주지역기구 설치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날 참관인 가운데 경주시 공무원을 제외한 울산과 부산시는 비공개 안건에 대한 참관이 제한되면서 울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 민심은 다시 들끓고 있다. 

◇ 공론화라면서 주요 쟁점은 '비공개'

지난 9일 열린 재검토위 17차 회의에서 1·2 안건은 공개로, 3·4 안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공개 안건에서는 시민단체, 지역 등에서 발송한 공문에 대한 회신 방식 논의가 이어졌다. 앞서 15차 회의에서도 한 차례 논의된 바 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바 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답변 유무와 '어느 기관이 회신 주체가 돼야 하는지'가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답변을 보내야 하는지', '재검토위에서 담당하되 특정 위원을 선별해 전담을 맡겨야하는지' 등이 논의됐다. 

오후 3시 30분에 시작된 이날 회의는 1시간이 넘도록 이같은 내용을 포함해 전문가그룹 제출 자료 관련 논의, 전국공론 의견수렴범위에 미래세대 포함 여부, 여론조사와 대국민 홍보를 맡길 기관 등에 관한 언급만 이어졌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에 따르면 울산시와 시의회, 시민단체 등은 재검토위 발족 후 10여 차례 의견서를 보냈지만 단 한 번도 회신받지 못했다. 일부 위원들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신속한 회신을 강조했지만 8개월이 넘도록 공문 회신 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오후 5시께 재검토위는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한 후 경주시청 공무원을 제외한 나머지 참관인들의 퇴장을 요청했다. 해당 안건이 무엇이냐는 현장 질의에 산업부 산하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해당 안건이 무엇인지도 공개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또 '참관인으로 왔던 경주실행기구 간사가 회의장이 남아있으니 의견수렴범위를 논의하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반면 울산·부산시청 관계자는 비공개 회의 참관이 제한됐다. 이들은 "위원회에 지역 의견서를 발송한 지가 언젠데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라면서 참관이 제한된 점에 대한 은근한 불만을 내비쳤다. 이날 울산시는 재검토위 관련 내용이 보도된 지역 언론 기사 수십건을 산업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재검토위 회의 참관 규정상 안건을 비공개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경우 참관을 불허할 수는 있다. 다만 안건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지 않거나 속기록도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은 투명성을 담보해야 할 공론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열렸던 15차 재검토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14차 재검토위 회의록 공개 여부 △회의 참관 서면의결 결과보고 △전문가그룹 본회의 주요 결과 △지역주민·시민사회 건의서 회신 유무 등이다. 회의록만 보면 이날 회의는 이같은 안건만 상정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15차 회의에서 많은 시간이 할애된 안건은 회의록에는 나와있지 않은 경주실행기구 관련 내용이다. 이날 지역이 제기한 '원전 반경 5km 이내 경주시'라는 의견수렴범위를 두고 재검토위와 지역 간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재검토위는 5km 문구를 제외한 경주시로 할 것을 제안했지만 지역 측에서는 원전 인근 거주민들의 의견에 좀 더 가중치를 둬야 한다며 5km라는 문구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거리와 관계없이 경주시 전체냐 혹은 5km로 제한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반경 5km 이내에는 양남과 양북면, 감포읍 등 3개 읍면이 포함되고, 20km 이상을 벗어나야만 경주도심 일대가 포함된다. 반면 반경 7km 이내에는 울산 북구가, 20km 내에는 동구 지역이 포함되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 이내에는 울산시민의 거주지가 모두 포함되는 셈이다. 실행기구 의견수렴범위가 경주시 전체가 될 경우 울산은 방사선비상구역에 포함됨에도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에 제외된다. 반면 반경 5km 이내로 확정되면 경주도심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같은 이견에 대해 15차 회의에서는 결론을 보지 못했다. 이어 같은달 23일에 열렸던 16차 회의에서도 경주시 측의 요청으로 논의가 이번달로 연기됐고, 최대 쟁점인 지역실행기구 구성과 의견수렴 범위, 방법론 등은 17차 회의에서 비공개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16차 회의록에는 지난 회의록에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에 대한 간사의 발언을 추가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나와있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15차 회의록에는 이같은 내용이 제외된 상태다. 

◇ 여론조사부터 서두르는 재검토위···"각본에 따라 움직여"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 전문가그룹은 지난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사진=김혜경 기자)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 전문가그룹은 지난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사진=김혜경 기자)

재검토위 전문가그룹에서는 지난해 11월 출범 이후부터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그룹은 기술과 정책 2개 분과로, 총 34명으로 구성됐다. 초반부터 내부에서는 재검토위가 지난 정부의 관리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이 아닌 임시저장시설 증설에만 몰두하고 있다거나 무엇을 공론화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론조사 일정에만 맞추려고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문가그룹 2차 회의 직후 정책 분과 소속 한 위원은 "폐연료봉 처분 필요성을 전제로 기술 현황과 능력 등을 정부와 사업자가 제시하지 않고서는 공론화 자체를 진행할 수 없는데도 왜 벌써부터 여론조사 항목을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면서 "무엇을 물어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전문가그룹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검토위가 사용후핵연료에 내포된 사회적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채 겉핥기식 공론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과 김수진 충북대 특별연구위원,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을 비롯한 전문가 위원 11명은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의 탈퇴 선언 이전에도 운영에 실망한 일부 위원은 일찌감치 이탈했거나 10여명은 해외 업무 등을 이유로 회의에 참여하지도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이날 탈퇴한 위원 가운데 2명은 앞서 재검토위가 전문가그룹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 뽑은 위원들이다. 나머지 20여명 가운데 11명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사실상 전문가 의견 수렴에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재검토위는 1월 중 전문가그룹 논의를 완료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간에 걸친 집중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느슨한 자문회의식 진행 등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특히 이들은 산업부의 임시자문기구에 불과한 재검토위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론화 이전에 정책을 독립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할 국가 차원의 방폐물관리위원회 설립을 주장했다. 공론화는 이같은 체계가 마련된 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1980년대 영국 환경부 산하 방폐물관리 자문기구인 'RWMAC'와 국영 원자력사업자 산하 방폐물관리 집행기구인 'NIREX'는 일방적인 부지선정 시도와 실패를 반복했다. 1987~1997년 중준위 방폐물 처분부지로 기존 원자력시설인 셀라필드 재처리장 인근을 선정해 암반특성시험시설(RCF) 설치를 추진했지만 지역 반발로 철회된 바 있다. 

1999년 영국상원은 의사결정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며 독립적인 기구 설립을 권고했고, 2001년 영국 환경농림부의 자문보고서를 거쳐 2003년 독립적인 '방폐물관리위원회(CoRWM)'가 설립됐다. 2006년에는 방폐물관리위에서 결정된 사안을 집행할 '원자력해체기구(NDA)'가 만들어졌고 기존 RWMAC는 해체됐다. 영국의 공론화 사례는 공론화 이전 방폐물 정책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한 이후 추진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병섭 소장은 "지난 정부와는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하고 참여했지만 맹목적인 공론화만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황이 초반부터 포착됐다"면서 "정책 재검토는 없고 여론조사를 포함한 간이용역과제 일정만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전문가회의, 연석회의, 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공론화 시작 전 필수적으로 정비해야 할 일과 세부 의제 조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계속 전달했지만 그때 뿐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같은 태도는 현재 해수유입과 방사성폐기물 방사능데이터 측정오류 등의 문제로 시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경주 중·저준위방폐장의 시행착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김수진 특별연구위원도 "불과 2개월의 요식적인 전문가그룹 회의결과를 근거로 공론화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무엇을 공론화할지도 모르면서 전국공론화를 하겠다는 건 예산낭비이자 보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선진국들은 기존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이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반성 하에 독립적인 국가차원 관리위원회를 설립하는 추세"라면서 "해외 공론화는 이같은 제도개혁의 결과물인데 박 정부와 현 정부 모두 방만한 관리체계를 방치한 채 공론화의 겉모양만 모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산업부는 전문가그룹 보이콧 선언 이후 일부 위원을 중심으로 설득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했음에도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향후 진행될 전문가 검토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수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성숙한 자세로 협조해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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