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설립, 왜 지금?
증권사 설립, 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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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연내 증권사 설립 신청을 받을 것이라 한다. 현직 금융감독위원장이 외신에 대해 밝혔고 홍보관리관이 11월까지 증권사 신규설립 기준을 발표하고 바로 인가 신청을 받아 올 연말까지 접수가 진행될 것이라고 관련 브리핑까지 했다니 확실히 진행될 것이다.
하필 이 시점이냐를 놓고 자본시장통합법 및 금융투자회사법 적용시점 등을 감안했을 때 이 일정이 가장 적절하다는 분석이라고도 한다. 이 발표에 따라 증권사 신규설립의 운을 띄어온 국민은행, 기업은행, SC제일은행 등이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그려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 모두가 다 합당하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의 적절성에 의문이 든다. 이런 비교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자꾸 노태우 정권 말기의 생보사 무더기 인가의 기억이 떠오르니 참 난감하다.
그 당시 재무부 중간 간부 한사람은 이런 말을 했었다. “정권 말기에 엔트리를 확대하는 목적은 뻔하다. 이런 걸 정권 말기에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그러면서 그는 훗날의 줄도산을 예고했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의 예상처럼 그 때 설립된 보험사 거의 대부분이 설립 후 불과 5년 안에 줄줄이 문을 닫았다.
당시 그 관리는 신규설립 인가를 곧 정치자금과 연결시켜 해석했었다. 우리의 현대사적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해석이 전적으로 그르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듯하다.
그렇다고 그게 물러날 정권의 목적하는 바라고 꼭 집어 말할 일만도 아니라고 본다. 물론 노태우 정권의 경우 후에 막대한 부정축재 사실이 들통 나기는 했지만 레임덕 상황에 빠진 임기 말 정권이 그런 일을 얼마나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지 그 힘의 크기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레임덕 상황을 처남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서로 이권 나눠 먹기에 이용하려는 그룹들이 일을 주도하며 정권 관련자들에게 떡고물이나 안겨주자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도 든다. 매번 반복돼 그런 일들이 벌어져도 실제로 그렇게 상황을 만들었던 인물들은 정치재판의 그늘에 숨어 사회적, 법적 책임추궁을 모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올해의 상황은 정권 차원에서 일을 벌인다고 보기에 시기가 너무 늦다. 대선 시기에 일을 시작해봐야 실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천상 차기정권에서 마무리 될 터이다. 그렇다고 차기 정권이 인수인계 받자마자 문제를 정밀하게 살펴보고 처리하기도 쉽지는 않을 터이고.
그럼 이 일의 내막을 모두 알고 상황을 장악한 이들은 정부나 정치권의 고시랑고시랑 대는 간섭을 들을 일도 없을 터이니 참으로 일사천리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선 택일을 참 잘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금융시장 구조상 새로운 증권사 설립이 해외 자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일 성싶다. 물론 국내 은행들이 증권사 설립에 나설 의사를 보이고는 있으니 아예 외국자본들만의 잔치는 아니겠지만 금감위원장이 하필 외신에게 맨처음 로드맵을 발표한 것도 석연치 않게 보인다.
이런 의심이 지나친 것일 수는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그런 과잉반응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정치권의 견제도 받지 않고 정부의 책임있는 통제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국가적 이익이 지켜지고 우리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지 걱정스러운 게 당연한 그림 아닌가.
개개인이 됐든 한 국가, 민족이 됐든 우리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경험을 물려받으며 성장한다. 다소는 어수선하고 매사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기 쉬운 정권 말기에 이권과 관련된 일을 새로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리 정당성을 주장해도 의심받기 딱 알맞은 시기 선택이다. 고래로 배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며 참외밭에서 신발 고쳐 신지 말라며 근신해온 선조들의 지혜에는 오랜 경험이 묻어있다.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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