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소 유량계 신뢰도 '논란'···법정계량 '코에 걸면 코걸이'
저유소 유량계 신뢰도 '논란'···법정계량 '코에 걸면 코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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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까지 공인기관 계량기 검증 없었다"
저유소 오일미터 조사 사업자 신청 여부에 달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상거래 행위에서 구매자가 지불한 화폐 액수는 부각되는 반면 판매자가 적절한 현물을 제공했는지 여부는 흔히 망각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주유소들이 유류 재고 부족 현상에 의문을 품었던 이유는 당연하게 여겼던 공급 단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유공장과 주유소를 잇는 가교 역할인 저유소에서는 과연 정량 공급이 이뤄지고 있을까. 정량 거래를 위해 정유사 출하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 가운데 각 저유소 유량계(오일미터)의 신뢰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법정계량기인 저유소 오일미터가 정확하므로 문제없다는 것이 현재 국가기술표준원 등 정부 기관의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2012년 11월 이전까지 공인기관 검증을 받지 않은 계량기가 유류 공급에 이용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과거 판교저유소에서 제3의 기관이 아닌 송유관공사의 자체 검증이 이뤄지면서 정유사와의 정량 공급 책임 여부를 둘러싼 분쟁과 함께 다른 민간저유소의 계량기 관리 실태에도 의혹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 2012년 10월까지 송유관공사 '자체 검사'→11월부터 KTC···왜?

저유소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을 일시적으로 비축해둔 장소다.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차량에 기름을 넣는 것처럼 탱크로리(유조차)는 저유소에서 가져온 기름을 주유소에 공급한다. 저유소는 정유사들의 정유공장과 주유소를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한다. 현재 국내에는 고양·판교·대전·천안 등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저유소 4곳과 민간 정유사가 운영 중인 곳을 비롯해 총 100여개소의 저유소가 있다. 이 가운데 수도권 유류공급의 핵심시설은 판교저유소다. 

저유소에서 정량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정량 거래가 이뤄지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유소 출하대(로딩다이) 배관 끝단에는 '유량계(오일미터)'라는 일종의 계량기가 부착돼있다. 출입 허가를 받은 탱크로리 기사는 배정받은 출하대 앞에 차량을 주차한 후 배관을 탱크로리 안에 넣고 기름을 담는다. 지난 2015년 탱크로리가 법정계량기에서 제외됨으로써 유류 거래에서의 제도상 공백을 보완할 유일한 잣대는 저유소의 유량계다. 법령계량기란 거래의 정확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계량에 관한 법률'로 정한 계량기 12종을 뜻한다. 

저유소 배관에 부착된 유량계로 충분히 정량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 계량당국의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오일미터가 법정계량기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배달사고가 없다는 전제 하에 출하전표를 근거로 정량 공급 여부 판단이 가능하다"면서 "현재 모든 법정계량기는 검증기관인 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의 형식승인을 받은 후 5년에 한 번씩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량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계량 문제를 넘어서 거래 관계에서의 범죄 행위로 볼 수도 있다"면서 "전수검사도 상당히 촘촘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표원의 설명대로라면 그동안 주유소들이 수차례 제기했던 저유소 계량기 신뢰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서울파이낸스>가 입수한 송유관공사 내부 문서에 따르면 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판교저유소에서는 2012년 10월까지 공인검증기관인 KTC가 유량계를 검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자료는 송유관공사가 자체 작성한 계량기 검정 기록표다. 저유소 사업자 측의 자체 검증으로 유류 거래가 이뤄져온 셈이다. 이는 엄밀히 말해 현행 계량법에 어긋난다. 

송유관공사가 자체 작성한 계량기 검정 기록표. (사진=독자)
송유관공사가 자체 작성한 계량기 검정 기록표. (사진=한국석유공사)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2012년 11월 6일 KTC 검정이 처음 실시되기 전까지 당사에서 1년에 두 번씩 자체적으로 계량기 교정을 했다"면서 "그동안 KTC 검정이 없었던 이유는 오일미터 호칭지름이 법정 제한치인 100mm를 초과했기 때문이고, 좀 더 정확한 계량을 위해 2012년 처음 KTC 검정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지난 2012년 한 업체가 송유관공사의 판교저유소 계량기 검정 여부와 관련, KTC로부터 받은 답변서에도 "2012년 9월 26일 현재 본원에서 해당 건에 대해 검정을 실시한 바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사진=독자
사진=독자

KTC 계량검정센터 관계자는 "송유관공사 측에서 검정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12년 11월 이전에는 실시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검정이지만 사용자 신청 의무가 우선이므로 그쪽에서 신청을 해야 본원에서 현장에 나가 검정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법에는 공인기관의 검정을 5년마다 받아야 한다고 적시돼있는데 사업자 측이 실시하면 안 된다"면서 "만약 봉인을 훼손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확인될 경우 현행법에 따라 처벌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공인기관 점검 후 봉인되기 때문에 출하량 조작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었다. 그러나 2012년 11월 공인기관의 검정이 실시됐음에도 이전에 이뤄진 유류 공급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 '유량계 크기' 둘러싼 논란···전수조사 여부는 사업자 재량?

계량법 제12조와 20조에 따르면 저유소 배관 유량계는 법정계량기로, 공인기관의 검정을 5년마다 받아야 한다. '호칭구경이 100mm 이하인 것에 한정한다'는 내용은 과거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주유소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정유사들은 배관 유량계 호칭이 100mm보다 큰 102~104mm 정도이기 때문에 법정계량기가 아니며 정기검사도 자율적으로 한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송유관공사의 2012년과 2017년 11월 KTC 검정확인서. (사진=송유관공사)
송유관공사의 2012년과 2017년 11월 KTC 검정확인서. 오일미터 규격이 100mm로 기재돼있다. (사진=송유관공사)

앞서 송유관공사도 2012년 11월 이전까지 KTC 검정을 받지 않았던 이유로 유량계 크기를 언급했다. 호칭지름이 100mm 이상이었기 때문에 검정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 그러나 공사가 제공한 2012년과 2017년 11월 검정확인서를 살펴보면 판교저유소의 오일미터 규격은 100mm로 기재돼있다.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실제 배관 유량계 지름은 약 102~103mm 정도"라면서 "기록표에 100mm로 기재된 이유는 검정기관의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KTC 관계자는 "법적 기준 구경인 4인치의 실제 길이는 101.6mm로, 이는 100mm로 봐야하며 실제 형식승인 받은 오일미터가 있다"면서 "4인치 오일미터 지름이 100mm가 넘기 때문에 계량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사용자 측의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판교저유소 외에도 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다른 저유소 혹은 정유사들이 운영 중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저유소 출하대에 설치된 유량계는 계량법에 따라 5년 이내에 공인검정기관을 통해 검량과 교정, 봉인한 상태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유소 내 모든 계량기를 대상으로 검사가 실시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KTC에 따르면 계량기 정기검사는 법에서 강제하고는 있지만 사용자의 검정 신청이 우선시된다. 검정 범위 또한 사업자가 정하기 때문에 저유소 내 모든 유량계가 아닌 일부만 검정을 받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또 다른 법적 사각지대라는 지적이다. 

각 저유소 유량계에 대한 별도 점검과 함께 정량 공급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저유소의 경우 정량 출하의 책임이 송유관공사인지 혹은 정유사인지는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다만 사업자가 일부러 정량을 공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이는 석유사업법 위반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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