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는 이제 그만
저주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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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 사회에는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을 법한 실천적 명상 서적들이 다수 나타나 특히 젊은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를 얻고 있는 듯하다. 그들 서적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자신에 대해서나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나 일단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낙관적 비전을 찾아내고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강조한다는 점이다. 긍정적 에너지가 자신을 감싸게 함으로써 긍정적 미래를 이끌어낸다는 주장인 것이다.

책에 따라서는 특정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보이기는 하나 근본 주장하는 바는 실제 우리 주변에서도 증명될만한 것들이다. 사회적 출세까지는 몰라도 평균적으로 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서 그런 낙관적 비전이 자주 발견된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면 아무래도 매사 적극적일 터이니 성취 가능성도 커지는 덕일 성싶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한다면 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등의 군대식 유행어가 널리 사용된 적이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하게도 보이지만 그 구호 속에는 왠지 살벌함이 묻어난다. 즐거움, 기쁨, 행복함 같은 긍정적 정서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희망은 기쁨과 동행한다. 미움과는 상극이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사회는 빛이 보이나 미움이 범람하는 사회는 짜증과 원망이 따라서 넘쳐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와 정반대로 혹여 그런 부정적 기운이 흘러넘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민족사적으로 보면 이제 도약을 시작했다. 그런데 발목을 잡으려는 기운이 자라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지난 주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두고 나온 논평, 사설들을 보면서도 그런 염려가 일었다. 대체적으로는 긍정적 평가들이 나왔지만 끝내 성과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정당, 신문을 보면서 이 또한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패거리 의식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싶어 서글프기도 하다. 그냥 사람이 미워서 그가 하려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기보다 딴지부터 걸려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은 듯하다.

남북정상회담은 자연인 누가 한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민족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큰 걸음을 뗀 일이었다. 큰 틀에서 잘못된 것이 아닌 바에야 일단은 긍정적 평가를 하고 볼 일이다. 회담이라는 것이 피아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일이니 내가 원하는 것을 100% 다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땅히 부수적으로 따르는 한계는 있을 터이다.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성과를 먼저 평가한 후의 일이다. 다음 단계에서 하나하나 짚어나가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모색해야 할 일인 것이다. 노골적으로 네가 한 일에 내가 어떻게 칭찬하겠느냐는 식으로 반응할 일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유포된 부정적 기운은 일부 지식인, 중산층 계급들 사이에서 가히 저주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비관론의 망령이 떠돌아다니게 만든다. 지금 한국 경제를 향해 일본으로부터 나오는 기사들 중에는 다분히 저주성이 짙은 글들도 일부 보인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국내 중산층 지식인 계급 사이를 내밀하게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완전히 예전 행운의 편지 전파하는 방식으로.

한 나라의 경제라는 것이 어느 때라도 방심해도 좋을 만큼 안정적일 수는 없다. 침체기는 말할 것도 없고 고속성장기든 안정성장기이든 거품은 없는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 수시로 점검하고 보완하며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대비를 해나가는 노력을 멈춰도 좋을 때는 없다.

지금 한국 경제에도 분명 우려하고 대책을 세워가야 할 일은 산적해 있을 터이다. 그렇다고 곧 한국경제가 제2의 IMF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저주에 옳거니 내응하며 우리 다 망했다고 여기저기 저주를 옮겨 퍼 나르며 오두방정 떨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현 정부가 미워서 정부를 비판할 재료랍시고 그렇게 남이 내 집안에 퍼붓는 저주까지 받아써서는 안 될 일이지 않은가.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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