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환경과 친해지려는 화학···'HPPO'로 미래 준비하는 SKC
[르포] 환경과 친해지려는 화학···'HPPO'로 미래 준비하는 S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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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산화수소에서 산소 분자 떼어내 프로필렌에 붙여···까다로운 공정
HPPO 부산물은 오로지 '물'···제조원가 높지만 환경 위해 전략적 투자
SKC 울산공장 전경. (사진=SKC)
SKC 울산공장 전경. (사진=SKC)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 23일 오후 방문한 SKC 울산공장의 첫 인상은 여느 화학공장과 다르지 않았다. 펌프와 컴프레션(압축) 설비가 가동되는 소리, 인공 합성물질이 생산되는 특유의 냄새, 합성 후 잔열을 방출하는 과정에서 냉각탑이 뿜어대는 커다란 구름모양의 연기, 하늘을 찌를 듯한 플레어 스택,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공장 내부 등 현대 문명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화학 물질없는 현대 사회를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친환경'이라는 용어가 어색한 곳도 화학 산업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업체들은 친환경을 앞세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SKC의 'HPPO' 공법이 그중 하나다. 

HPPO 공법의 특징은 과산화수소를 이용해 '프로필렌옥사이드(PO)'를 제조한다는 것이다. PO는 자동차 내장재 등에 쓰이는 폴리우레탄의 원료 '폴리올(PPG)'과 화장품·의약품 원료인 '프로필렌글리콜(PG)'의 기초 원료다. SKC는 해당 액체 원료들의 중간재를 생산하고 있다. 기존 염소공법(PO-CL)이 프로필렌과 염소, 석회를 이용해 PO를 만들기 때문에 염화칼슘 등 독성 폐기물이 발생하는 반면 HPPO는 물 이외에 다른 부산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사진=김혜경 기자
PO와 PG, 폴리올 등 SKC 울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 사진=김혜경 기자

이날 울산공장에서 만난 하태욱 SKC 화학생산본부장은 "SKC는 2000년대 중반부터 친환경 공법에 주목해 지난 2008년 세계 최초로 친환경 PO 제조 공법인 HPPO 공법을 상용화했다"면서 "해당 공법은 과산화수소(H2O2)에서 산소 분자를 떼어내 프로필렌에 붙이는 방식인데 공식만 보면 간단해보이지만 실제 매우 까다로운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SKC의 PO 생산량은 연간 31만t으로, t당 가격(150만~200만원)으로, 환산했을 때 약 6000억원 정도다. 이는 국내 PO 시장 소비 물량(약 50만t)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금까지 SKC가 생산하는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지난해까지 국내 독점으로 생산해오다가 최근 에쓰오일이 PO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유일 생산 체제가 깨졌다. 

SKC는 1987년 라이온델(Lyondell)과 PO/SM(스티렌모노머)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후 합작사인 유공-아코화학으로 출발했다. 1991년 PO와 PG, 폴리올 상업 생산을 시작했고, 2001년 SKC와 통합됐다. 2008년 반응제 안정화 과정 등 2년 동안 프로젝트 기간을 거친 후 HPPO 상업 가동에 이어 2012년에는 HPPO 130% 증설에 성공했다. 

약 40만㎡ 규모의 SKC 울산공장은 병산공정인 PO/SM 설비와 단독공정인 HPPO 등 2개의 PO 공장으로 이뤄져있다. 도로 하나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공장은 외관은 서로 비슷하지만 규모면에서는 PO/SM 설비가 압도적으로 크다. 김성호 SKC 생산기술팀장은 "PO/SM 설비가 HPPO에 비해 초기 투자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면서 "PO/SM은 HPPO 규모의 약 2~3배이기 때문에 HPPO는 규모 면에서도 친환경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제조원가를 비교했을 때는 과산화수소를 사용하는 HPPO가 상대적으로 높다. 

SKC HPPO 공법의 장점은 소형 반응기를 이용해 미리 촉매 특성을 파악해 본다는 점과 폐열 재활용이다. 화학공장의 핵심은 물질 변환이 발생하는 '반응기(Reactor)'다. 반응기에서 원하지 않은 물질이 생산될 경우 부반응, 즉 불순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소형 반응기를 연구소에 설치해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는 있지만 SKC는 실제 공정에 소형 반응기를 설치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김 팀장은 "파일럿 소형 반응기를 이용해 촉매 특성을 미리 파악하고, 반응기의 온도를 세밀하게 조정한다"면서 "실제 공정에 설치했기 때문에 촉매 변화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폐열 회수로 에너지 절감도 가능하다. SKC의 HPPO 설비는 메탄올 정제탑에서 만들어지는 고온의 유증기를 다른 증류탑의 열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 설계상 메탄올 정제탑은 2개지만 HPPO의 정제탑은 3개다. 폐증기가 지나가는 경로에 위치한 관에서는 물이 통과하는데 증기의 열로 인해 순간적으로 물이 데워지고, 이 온수를 정제탑 열원으로 사용한다. 실제 HPPO 정제탑 외부에는 PO/SM과는 달리 열망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는 폐열 재활용으로 당초 설계보다 에너지 사용량을 60% 이상 줄였다고 설명했다. 

SKC는 HPPO 공법을 이용해 중국, 동남아 등 글로벌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SKC는 중국 석유화학기업 QXTD, 독일 화학기업 에보닉 등과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다. 이들은 HPPO 공법을 도입한 PO 생산 합작사를 중국 산둥성 쯔보시에 설립하기로 했다. 생산량은 울산공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오는 2021년 상반기 상업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고성장 시장인 중국은 최근 강화된 환경 규제로 현지 업체들 사이에서 HPPO 공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현재 중국 PO 생산 설비 대부분은 폐기물을 배출하는 염소법이기 때문에 향후 경쟁력 측면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평가다. 

하 본부장은 "유럽 시장에는 바스프(BASF)가, 미국에서는 라이온델 등이 진출해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PO를 생산하는 주요 업체는 SKC와 일본의 스미모토가 전부"라면서 "기술력을 기반으로 중국에 이어 향후 동남아, 중동 지역 등에 진출해 외형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글로벌 PO 시장에서 SKC의 점유율은 높진 않지만 설비 수직계열화는 SKC가 가진 장점"이라면서 "메이저업체들 중 수직계열화된 곳은 바스프 정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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