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마고소양'을 기대하는 민의
[홍승희 칼럼] '마고소양'을 기대하는 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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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해년을 맞아 상당히 관심을 모으는 사자성어 하나가 등장했다. 마고소양(麻姑搔痒).

다소 생소한 이 사자성어의 의미는 마고가 긴 손톱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뜻이다. 힘이나 능력 있는 존재의 도움으로 바라는 바를 이룬다는 뜻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성인남녀 1천270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망과 가장 가까운 사자성어’를 취사선택하도록 한 결과 소원성취나 무사무려(無思無慮-아무 생각이나 걱정이 없다)보다 더 많은 선택을 받은 말이 마고소양이었다. 소원성취가 11.7%, 무사무려가 13.0%인데 반해 낯선 사자성어인 마고소양은 15.0%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것이다.

긴 손톱을 가진 마고는 중국 전설의 산물이다. 그러나 학계에서 소설이나 신화집 정도로 간주하는 우리의 민간 전승사서 ‘부도지’에 따르면 마고는 창세신이다. 신라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알려진 이 전승사서의 맥락을 보면 마고는 구 인류가 사라진 세상에서 선천의 정(精), 즉 엑기스와 후천의 엑기스를 한데 모아 세상의 어머니인 최초의 인류 두사람을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모든 인류가 거듭 생겨나며 불어나 사방으로 흩어져갔으니 마고는 창조신이다.

그런데 삼 마자에 할미 고를 쓰는 마고라는 이름자를 풀어보면 우리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삼신으로 읽힌다. 할미는 고대사회에서 씨족의 가장 큰 어른이면서 돌아가시면 곧 신(神)이 되시니 할미는 곧 신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마고는 곧 삼신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도 ‘~을 삼다’ ‘~으로 삼다’처럼 ‘삼’이 창조의 의미로 해석할만한 흔적들이 남아있으니 이는 언어학에서 한번 숙고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삼신은 고래로 유아들이 다치는 것을 종종 막아주며 보호해주는 막강한 보호자로 인식돼 왔다. 그래서 세 살 이전에는 삼신할머니가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이어져왔었다. 그런 삼신을 문자로는 마고라고 적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아무튼 그런 마고가 우리의 아쉬운 부분을 해소하고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올 초의 소망 중 1위를 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구체적으로 누군가가 내 답답한 상황을 풀어달라는 간절한 민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 주체에게 직접 들어 확인한 사항은 아니지만 자영업자들이 특히 이 사자성어를 많이 선택했다는 말도 들었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만큼 자영업자들이 절박하다는 의미는 아닐까 싶어 안쓰럽다.

이에 반해 재계 신년사의 공통 키워드는 위기 극복, 사회적 가치 제고, 미래 지속 성장 기반 구축 등 서민들의 상당히 막연한 기대에 비해 다소 현실적인 용어들로 채워졌다. 신년사 중에 등장한 사자성어로는 삼성전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나 포스코의 ’승풍파랑(乘風破浪) 등이 눈에 띄지만 그저 앞선 말들을 압축 표현하는 데 그쳐 참신함은 안 보인다.

재벌개혁을 원하는 정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은 재계는 늘 그렇듯 그저 미사여구 가득한 의례적 신년사로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어느 미디어에선가는 기업이 바라는 것이야말로 마고소양이 아닐까, 정부는 기업의 마고가 될 생각은 없는가 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선 재계와 기업이 교묘하게 뒤섞여 쓰여 진실이 흐려지는 폐단이 보인다. 대기업과 재벌을 동일시하는 개발독재 이후의 지속되는 논법이다.

물론 정부의 규제개혁도 필요하긴 하다. 기업의 신성장산업 투자를 규제하는 법규는 당연히 개정되어야 한다. 그 투자의 과실이 사회적 성장을 이끌 수 있다면.

그러나 그것이 성장 과실의 재벌 독식으로 이어질 뿐 사회적 소득확대와 소비여력 증진으로 이어질 수 없다면 그건 오히려 사회적 재앙이 될 뿐이다.

올 들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을 받고 있는 한국GDP 성장의 두 견인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재벌 대기업들은 과연 사회적 소득확대에 그들의 규모만큼 기여하고 있는가. 일단 그들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에 비하면 일자리 제공도 충분치 않고 그들 기업 아래로 하청, 재하청의 악순환 고리가 너무 강하지 않은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부추기길 원치 않는 정부는 없을 테고 성장의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권도 없다. 다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켜 지속성장을 저해할 규제개혁이라면 안하는 게 답이다.

마고의 도움이 간절한 서민들의 소망과 재계의 탐욕을 같은 저울에 올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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