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의 비밀 上] '들쭉날쭉' 기름 유통···과연 적정 양일까?
[15도의 비밀 上] '들쭉날쭉' 기름 유통···과연 적정 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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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논란의 중심, 석유 제품 '온도 보정'···폭염엔 소비자 불리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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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 한반도. 요즘 같은 날씨에 주유를 하면 기름이 적게 들어간다. 석유 제품은 온도에 따라 부피가 변한다. 온도가 높아지면 부피가 늘어나기 때문에 기준 시 부피보다 적은 양의 기름이 차량에 주입된다. 기온에 부피 변화로 인해 15℃의 물량을 기준으로 유류세가 책정되지만 실제 유통 시 적용되는 온도는 제 각각이다. 기준 온도를 모르는 소비자가 대다수일 뿐만 아니라 주유소에서도 정량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뜨거운 기름'과 온도보정 문제는 국내에서는 1997년 처음 지적된 이후 2008년 국정감사 당시 크게 논란이 됐다. 법안 발의로 해결될 기미가 보였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소비자 본인도 모르게 샌 돈은 1차적으로 정유사와 주유소 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다.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반대 쪽의 이익을 편취하는 행위. '정보 불균형'으로 얻는 이익은 과연 공정할까. 

◇ 석유 제품 거래 방식은 두 가지···'Net'과 'Gross'

국내 기름 값은 60% 이상이 세금이다. 휘발유의 경우 리터(L)당 △교통에너지환경세 529원 △주행세 137.54원 △교육세 79.35원 △수입부과금 16원 △관세 3% △부가가치세 10% 등으로 구성돼있다. 15℃가 중요한 이유는 수입부과금 부과 기준일 뿐만 아니라 석유제품 거래 기준 온도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2월 개정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의 수입·판매부과금의 징수, 징수유예 및 환급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물량단위가 부피단위인 경우 15℃에서의 물량이 기준이다. 소비자는 해당 온도에 맞춰 부과금 납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구매하는 기름이 15℃인지 기준과 달라도 주유 당시 온도가 몇 도인지 알 수가 없다. 

산업자원통상부에 따르면 '액체용 계량기 기술기준'의 휘발유는 1℃마다 0.11%, 경유는 0.08%씩 부피가 변동한다. 온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부피가 늘어나고 기름이 뜨거울수록 정량을 공급받을 수 없다는 것. 이는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 일선 주유소도 마찬가지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15℃ 기준 온도보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휘발유 2만L를 15℃에서 공급받을 경우 정량을 받지만 25℃의 경우 1만9780L, 35℃면 1만9560L로 줄어든다. 

석유제품의 거래 방식은 크게 Net 방식(형량법)과 Gross 방식(비교법)으로 분류된다. Net 방식이란 온도와 밀도를 이용해 15℃일 때의 질량으로 환산해 거래한다. Net 방식으로 주유소에 입고되는 경우 출하전표상 온도에 따라 출하수량과 정산수량이 환산돼 다르게 기재된다. 확보된 출하전표를 대상으로 'KS M2002' 부피환산계수표에 따라 실량을 분석해봤다.

첫 번째는 2016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발행된 에쓰오일의 출하전표다. 해당 주유소는 정유사에 1만1999L를 주문했다. 온도는 37.75℃, 비중(밀도)은 0.7192g/㎤로, 해당 수치를 계산하면 환산량은 1만1662.4L다. 온도보정 결과 전표에 기재된 1만1663L와 거의 일치한다. 

사진=각 주유소
사진=각 주유소

두 번째는 2017년 8월 29일 오후 3시에 발행된 GS칼텍스의 전표다. 해당 주유소는 2만L를 주문했다. 전표상 온도 29.1℃, 비중(밀도) 0.7221g/㎤를 계산하면 환산량은 1만9641L다. 전표에 기재된 정산수량 1만9641L와 비슷하다. 

사진=각 주유소
사진=각 주유소

위의 사례처럼 Net 방식으로 입고되는 경우 온도 보정을 받기 때문에 주유소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다만 Net 방식이 적용됐더라도 출하전표가 정유사 물류센터(저유소)에서 발행되므로 배달 과정에서 부풀려진 유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반면 Gross 방식은 온도와는 상관없이 부피 단위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해당 방식이 적용될 경우 출하전표에는 온도가 표기돼 있지 않거나 온도 확인이 가능하더라도 출하량과 정산량이 같은 수치로 표기된다. 온도에 따른 부피 보정이 되지 않는다. 정유사와 주유소 간 거래 시 Net과 Gross 방식이 함께 사용되지만 대부분의 주유소에는 Gross로 유류를 받고 있다. 해당 방식이 적용된 출하전표를 분석해봤다. 

우선 올해 1월 12일 오후 5시에 발행된 GS칼텍스의 출하전표에는 온도와 비중은 기재됐지만 온도 보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주문수량과 정산량이 각각 2만L로 동일하다. 전표상 온도는 영하 0.7℃로 기준 온도인 15℃에 비해 훨씬 낮은 온도다. 온도 보정 계산을 해보면 2만143L로, 해당 주유소는 143L를 덜 공급받은 셈이 된다. 

사진=각 주유소
사진=각 주유소

2012년 6월 3일 오전 7시에 발행된 현대오일뱅크의 출하전표에도 승인수량은 2만L로 표기됐지만 환산수량은 비어있다. 온도는 22.4℃, 비중(밀도)는 0.7243g/㎤로 온도 보정 계산을 하면 1만9810L다. 해당 주유소의 경우 다른 업체의 유류계량기를 이용해 별도로 정산수량을 확인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각 주유소
사진=각 주유소

출하전표에 아예 온도와 비중(밀도) 값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8월 11일 오전 3시 발행된 에쓰오일 전표에는 비중은 표기돼 있지만 온도가 없었다. 또 SP탱크터미널의 경우 2012년 8월 18일 오전 7시 발행된 전표를 살펴보면 온도와 비중 값 둘 다 없다. 

사진=각 주유소
사진=각 주유소
사진=각 주유소
사진=각 주유소

일부 주유소는 온도 보정이 된 Net 방식으로 공급받고 있지만 Gross 방식으로 입고되는 경우 주유소 입장에서는 정량이 제공됐는지 인지하기 어렵다. 정량으로 공급받았다고 여겼다가 재고량이 빨리 소진될 경우 의문이 들게 되는 것.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름철 손해라면 추운 날에는 오히려 기름이 남아야 한다. 그러나 위에 제시된 사례처럼 오히려 겨울철에도 온도 보정을 해주지 않아 입고량이 줄어든 경우도 있다. 과거 한 주유소에서는 유류 부족을 이유로 한국석유공사에 보상 요청을 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자료=제보자
자료=제보자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온도 보정을 통해 거래하기도 하고, 오히려 단순 부피 거래가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온도보정을 선택하지 않는 주유소도 있다"면서 "정유사가 정량을 공급하는지 의심하는 일부 주유소가 있지만 대부분은 주유소 상황에 따라 입고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각 주유소 상황에 따라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Net 방식 혹은 Gross 방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면서 "통상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주유소에서도 석유제품 기준 온도 등 관련 사항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입고방식을 자주 바꾸는 곳이 있고 지속적으로 부피로만 받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 '1도' 올라봤자?···소비자만 온도 보정 없어

휘발유는 온도가 1도 상승하면 부피가 0.0011L(1.1mL)로 늘어난다. 사실 소비자 1명이 1회 주유 시 부피 변화에 따른 손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기간 석유 제품 판매량을 이용해 온도 변화에 따른 단순 이익금을 산출해보면 결코 적은 액수라고 볼 수 없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휘발유 제품 소비량은 7961만6000배럴로 집계됐다. 1배럴은 약 159L이므로 해당 수치를 리터로 환산하면 126억5894만4000L. 1년간 주유소 기준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1494.85원이므로, 기준 온도(15℃)에서 1℃ 오르면 휘발유 부피는 0.11% 늘어나므로 총 이익금은 208억1554만4682원이다. 5℃ 상승할 경우에는 1040억7772만3411원으로 집계됐다. 다만 온도 보정 미 실시에 따른 이익금의 최종 수혜자가 정유사인지 주유소인지는 불명확하다. 

석유 제품 거래 상대에 따라 공급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국내 정유사가 해외에서 원유를 도입하거나 비축유 거래, 공공기관 등 대형 수요처에 공급할 때는 온도에 따른 부피 보정을 실시한다. 

반면 주유소와의 거래 시에는 Net 방식과 Gross 방식을 함께 사용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현재 일선 주유소에서 Net 방식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Gross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면서 "여름과 겨울철 기온을 고려했을 때 온도 차에 따른 공급 물량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유소와 일반 소비자 간 주유기를 통한 소매 거래 시에는 전량 Gross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온도 보정이 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이 같은 정보를 소비자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현재 온도보정장치를 별도 부착한 주유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과거에도 해당 사안이 이슈가 돼 장치 부착 관련 논의가 된 적이 있었는데 실효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대량으로 거래하는 주유소의 경우 온도 보정에 따라 수백만원까지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온도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몇 원 차이"라면서 "여름에는 소비자들이 극소량 손실을 보기도 하지만 계절에 따라 이득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유소 지하 유류저장탱크가 연중 15℃를 유지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받는 피해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류병택 오일시스템 대표는 "지하 기름탱크 온도가 항상 15℃ 전후를 유지하므로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실제와 다를 뿐만 아니라 주유 시 실제 적용되는 온도와는 관련이 없다"면서 "지하 탱크 온도가 아닌 '토출(吐出)온도'가 중요한데 땅 위로 기름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겨울철에도 10℃ 이상 차이가 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자료=2008년 최철국 의원 국정감사 정책 자료집
자료=2008년 최철국 의원 국정감사 정책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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