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의 비밀 下] '제자리걸음' 유류 온도 보정···못하나 안하나 
[15도의 비밀 下] '제자리걸음' 유류 온도 보정···못하나 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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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사적거래 과도 개입 우려 보정 장치 소비자 효용성 의문"
국표원 "적정 수준 비용 전제된다면 공정한 계량질서 확립 도움"
캐나다의 자동온도보상 장치가 부착된 주유기의 문구 표시 (사진=2009년 12월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 온도보상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
캐나다의 자동온도보상 장치가 부착된 주유기의 문구 표시 (사진=2009년 12월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 온도보상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뜨거운 기름' 논쟁은 석유 부피 변화로 정량을 공급받지 못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매번 여름철 소비자가 손해인 반면 겨울철 이득을 보기 때문에 결국 같은 것 아니냐는 말이 반복된다. 문제는 정보의 불균형. 지불한 만큼 정확한 양을 제공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다. 불공정 거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15℃에 맞춘 온도 보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국내에서 처음 문제가 제기된 것은 1997년 일부 주유기에 온도 보정 장치가 부착되면서다. 2008년 국정감사 당시 여론의 조명을 받자 지식경제부는 석유관리원에 연구 용역을 맡긴 바 있다. 보고서 발간 이후 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 문턱을 넘지 못함으로써 또 다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비용과 실효성 문제로 일단락됐다는 입장이지만 온도 보정 연구 개발이 진행되는 등 논쟁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 밀도·주유기 사용공차 문제가 더 중요?

온도 보상제란 석유제품 거래 시 온도 증감에 따른 부피 증감을 기준 온도(15℃)에서의 부피로 보정해 공급하는 제도다. 해당 제도가 실시된다면 주유소도 정확한 재고 관리가 가능해지고, 정유사로부터 정량을 공급받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계절별 온도 변화에 관계없이 기준 온도의 유류 구매가 가능해진다는 취지다. 주유소 단계 정량 공급을 위해 논의된 방법은 주유기에 ‘자동 온도 보정 장치(ATC)’를 부착하는 것. 현재 캐나다와 벨기에 등에서 사용 중이다. 

2009년 12월 발간된 '석유제품의 온도보상 제도 도입 검토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온도보정 미 실시로 인한 정보 불균형은 인식하면서도 보정 장치 부착은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석유 제품의 밀도 차이와 온도 보정 장치 비용 문제로 형평성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주유기 자체의 사용공차를 줄일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 내용 중 몇 가지 의문이 드는 부분을 살펴봤다. 우선 밀도 문제다. 해당 보고서는 “석유 제품 특성 상 밀도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거래 부피를 단순 15℃에 맞춰 공급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온도 보상제가 이뤄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온도와 밀도(비중) 변화 중 실제 어느 값이 상대적으로 차이가 큰지 비교해봤다. ‘KS M2002’ 부피환산계수표에 따르면 △액화가스 1.50~0.60g/㎤ △휘발유 0.710~0.750g/㎤ △항공유 0.780~0.800g/㎤ △등유 0.790~0.815g/㎤ △경유 0.815~0.855g/㎤ 등으로 밀도값 범위가 정해져있다. 기준 온도 15℃일 때 비중은 1이다. 

휘발유 온도를 20℃로 가정했을 때 주문수량 2만L 기준 0.710g/㎤와 0.750g/㎤ 값을 계산해보면 정산량은 각각 1만9870L, 1만9880L로, 차이는 10L 정도다. 반면 온도가 15℃에서 20℃로 오를 경우 0.710g/㎤의 정산량은 1만9870L, 0.750g/㎤는 1만9880L로 각각 130L, 120L 차이다. 밀도보다 온도 변화에 따른 유류량 변화가 훨씬 크다. 

보고서는 휘발유 실제 밀도와 연간 평균 밀도 차이에 의해 월별 주유소 입고량과 판매량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특히 휘발유의 경우 연평균과 월별 밀도의 차이 비율이 주유기 사용공차(0.75%)의 두 배인 1.47%로 집계돼 온도 보상 장치가 부착될 경우 오차를 초래한다고 봤다. 그러나 LPG가 중간 밀도 값에 맞춰 온도 보정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처럼 유류도 동일한 방법으로 공급하면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도 소비자 판매 전 정유사-주유소 단계에서 Net 방식(형량법)에 의한 정량 판매가 일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과 유류 입고 시 온도와 토출 온도가 동일해야만 정확한 비교가 가능하다. 최소한 주유소에서 재고량 파악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료=2009년 12월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 온도보상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
자료=2009년 12월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 온도보상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

두 번째는 주유기 사용공차 문제다. 보고서에는 “휘발유와 경유의 토출량은 기준 토출량보다는 약 –0.15%, -0.18% 감소한다”면서 “이는 주유기 사용공차(±0.75%) 이내로 본 연구에서 조사된 연간 주유기 기준 토출량에 대한 실제 토출량 비율인 –0.25%보다 비율이 작기 때문에 온도변화에 따른 부피변화 문제보다는 주유기 사용공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석유사업법에서 사용공차란 ‘계량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른 계량기의 사용오차를 말한다. 주유기의 사용오차는 정량의 ±0.75%로, 20L 기준 ±150mL다. 기름 부피 팽창 변수 중 하나로 주유기 오차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매번 되풀이됐다. 그러나 지난 2013년 6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진행된 '주유기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주유기 사용공차와 온도에 따른 부피 변화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해야할 사안으로 보인다. 

조사결과 –0.5%(-100mL)를 초과한 주유기는 전체 조사 대상(200대)의 8대인 4%였고, -0.6%(-120mL)를 초과한 주유기는 1대로 나타났다. 동절기의 경우 주유기 오차가 ‘음(-)의 방향’으로 이동했지만 8월의 경우 기름 온도가 상승함에도 같은 방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기름온도와 오차와의 관계는 별개라는 결론을 냈다. 오차가 발생한 주유기 중 절반이 기계적 결함이 아닌 자연적인 결함으로 나타났고, 각 주유소가 자체 일상 점검을 실시하면 오차 관리가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유기 오차 문제는 관련 제도가 정비된 상태다. 석유사업법 제39조에서는 판매업자가 사용공차를 벗어나 정량에 미달해 판매할 경우 사업정지 또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반면 소매 판매에서 온도 변화에 따른 정량 공급 여부는 현재로서는 강제할 수단도 기준도 없다. 

산업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불공정거래가 발견될 경우 행정처분을 내리면 되지만 해외 사례도 부족한 상황에서 보정 장치 부착을 의무화하게 되면 부작용이 더 심할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일괄 비용을 제공하지 않는 이상 업체들은 찬성하지 않을뿐더러 사적 거래에 대한 과도한 관여로 비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온도 보정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주유기 오차범위부터 줄여야 한다고 본다”면서 “문제 제기는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제도 개선 측면에서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 '경제성 없다'는 보고서 이후···국내서 ATC 개발은 지속

온도 보정 장치 도입의 핵심은 비용 문제다. 보고서에는 “경유는 10년 간 44억원으로 경제성이 있지만 휘발유의 경우 68억원 손해이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면서 경유와 휘발유를 합쳐 24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는 충북지역 주유소를 대상으로 소비자 편익과 온도 보정 장치 비용을 계산해 도출한 결과다. 보정 장치 비용의 근거로 캐나다 제조사의 설치 비용 2150달러를 원화로 환산한 가격 258만원을 계산에 포함시켰다. 현재 국내에 제조업체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해외 사례를 반영했다는 것. 

국내에 관련 회사가 없다는 것은 사실일까. 최철국 의원의 2008년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1997년 국내 중소기업 두 곳이 협업해 개발한 온도 보정 장치는 한국기기유화연구원의 검증을 받은 후 전국 700대 주유기에 설치된 바 있다. 설치 1년 후 관련 기관을 동반해 조사한 결과 정확도는 0.25%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철회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도시가스 계량기 부착 사례와 비교해 봤을 때 정유사들의 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유업계와 주유소협회 측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1997년 석유가격 자유화가 되면서 공공요금 성격이 아닌 민간 자율 결정으로 변경됐는데 해당 내용이 사실이라면 시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효용성이 없었기 때문에 중도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연구원들이 경기도의 한 제작업체를 찾아가 현장 조사를 실시했지만 실제 보고서에는 국내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재된 점도 의문으로 남았다. A업체 대표는 “ATC 비용에 대한 설명과 관련 자료도 전달했지만 최종 보고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효성 없다'는 해당 보고서 결론과는 달리 지난 2015년 정부는 ‘온도 보상 기능을 포함한 주유기 개발’이라는 과제로 연구 개발 지원 공고를 내기도 했다. 출연금은 1억5000만원으로 계량측정 고도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자료=계량측정 고도화 사업 제안 요구서
자료=계량측정 고도화 사업 제안 요구서

국가기술표준원 계량측정제도과 관계자는 “예산과 사업 범위에 대한 협의가 끝나면 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공모와 과제 선정, 최종평가까지 관리한다”면서 “공모에 참여한 업체의 보정 장치 검정오차가 ±0.3%를 만족하지 못해 최하점을 받았고, 정부출연금 전액이 환수 조치됐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 당시 정유업계는 온도 보상 관련 반대 분위기를 형성했지만 우리 측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면서 “장치가 고가일 경우 소비자 전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적정 수준의 비용이라면 도입을 하는 편이 공정한 계량질서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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