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회용컵 규제 현실성 없어요"…정부는 우왕좌왕
[르포] "일회용컵 규제 현실성 없어요"…정부는 우왕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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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북적이는 커피전문점 손님직원 모두 '탁상행정' 비판
지자체별 단속 기준도 달라, 환경부 허겁지겁 가이드라인 논의
1일 오후 1시경에 찾아간 서울 중구 엔제리너스커피 무교점. 손님들이 이용한 뒤 놓고 간 일회용컵들이 쌓여 있다. (사진=박지민 기자)
1일 오후 1시경에 찾아간 서울 중구 엔제리너스커피 무교점 안에 손님들이 두고 간 일회용컵이 늘어서 있다. (사진=박지민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지민 기자] "손님들에게 머그잔 사용을 권하고 있지만 불만을 내비치거나, 일회용컵으로 달라는 분들이 많아 곤혹스러워요. 오늘부터 환경부에서 단속한다고 들었는데,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울 거 같아요." 

역대급 폭염이 전국을 강타한 1일 오전 서울 중구지역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매장 5곳(스타벅스 무교동점, 엔제리너스 무교점, 커피빈 서울시청뒤남강빌딩점, 할리스커피 무교점, 탐앤탐스 청계광장점)을 찾았다. 직장인 밀집 지역이어서 그런지 오전 시간대 매장 안은 대체적으로 한산했다. 5곳 모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유리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환경부는 지난 5월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에 따라 8월1일을 기점으로 일회용품 사용 집중 점검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매장 안에서 일회용컵을 쓰다가 적발되면 해당 사업장에 최대 2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게 뼈대다. 

정부 방침에 발맞춰 이날 커피 전문점 직원들은 다회용컵 사용을 소비자들에게 적극 권장했다. 전날 찾았을 때보다 유리잔 사용이 부쩍 늘어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손님들이 몰리는 점심시간 때부터 매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날 서울의 한낮 기온은 39도. 더위를 피하려는 직장인들이 매장 안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 매장 안에선 손님이 잔을 떨어트리는 탓에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5곳 모두 오전과 달리 유리잔보다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손님이 월등히 많았다. 특히 엔제리너스 무교점과 할리스커피 무교점은 유리잔을 사용하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스타벅스 무교동점을 찾은 김지원(32)씨는 "커피를 주문하면서 머그잔을 사용 권유를 받지만, 오래 앉아 있을 계획이 아니어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잠깐 앉아 있다 갈 건데 머그잔에 음료를 받으면, 나중에 일회용컵으로 옮겨달라거나 버려야 해 불편하다"는 게 굳이 그가 일회용컵을 찾는 이유다. 

손님들뿐 아니라, 직원들도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직원 A씨는 "점심시간대에 손님들이 폭발적으로 몰리는데 잔을 일일이 씻으려면 일손이 달린다"면서 "머그잔 사용을 적극 권하고 있지만, 불편을 느끼는 손님들이 많아서 응대에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1일 오후 할리스커피 무교점 매장에 앉아 있는 손님들 대부분이 일회용컵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박지민 기자)
1일 오후 할리스커피 무교점 매장에 앉아 있는 손님들 대부분이 일회용컵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박지민 기자)

게다가 환경부가 애초 발표와 달리 일회용컵 단속을 하루 미루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계획이 미뤄진 건 지방자치단체별로 단속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 의사를 밝힌 소비자가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았다가 마음을 바꿔 매장을 이용하는 경우 단속 대상에 포함할 것인지 등 세부 단속기준을 통일하지 않은 게 문제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지자체별 담당자들을 모아 급히 회의를 열고 단속 가이드라인을 논의했다. 이날 최종 논의를 거친 뒤 내일부터 각 지자체에서 본격적인 단속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서울파이낸스>와 한 통화에서 "매장 직원이 다회용컵 사용을 권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손님이 매장 내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하더라도 단속 대상에 포함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 내 손님이 많아 제공할 수 있는 다회용컵이 모두 소진돼 일회용컵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손님들에게 제공할 다회용컵을 충분히 구비했는지도 점검 항목에 포함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에선 일회용컵 단속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 한 관계자는 "매장이 가득 찰 정도로 손님이 많을 때 차질 없이 다회용컵을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가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면서 "부족함 없이 서비스할 수 있도록 각 매장에 머그잔을 공급하고 있지만, 잔이 손상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데다 많은 양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도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자는 정부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아직 현장에서 머그잔 사용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는 "체계가 미처 자리 잡지 않은 상황인데, 과태료부터 부과하겠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업장에 다회용컵 사용을 강요하기 전에 소비자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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