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늘려도 문제"…보험업계, '부실 약관' 놓고 '딜레마'
"양 늘려도 문제"…보험업계, '부실 약관' 놓고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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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많으면 약관 평가 점수 받기 불리
"보험 약관 간소화 추세 역행" 지적도

[서울파이낸스 서지연 기자] 보험사들이 분쟁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부실 약관'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분쟁을 줄이기 위해 애매한 규정을 약관에 모조리 명시하면 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보험 약관 이해도 평가에서 감점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보험금에 이어 최근 즉시연금과 암 보험금 등 논란의 근본 원인으로 '부실 약관'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즉시연금 상품은 약관 상 연금액 산정 방식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 일으켜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감원은 해당 약관에서는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빠져 있어 이를 공제하지 않은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업계는 해당 내용의 경우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들어 있고, 약관에는 산출방법서에 따라 연금액을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며 항변하고 있다.

허술한 약관에 따른 보험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천억 원대 보험금이 지급된 자살보험금 문제도 보험사들의 약관상 실수로 시작됐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암보험 역시 보험금 지급 요건을 '암의 직접적인 목적'으로 규정해 '요양병원치료'가 보험금 지급 대상인지 여부에 이견이 많다.

금감원은 약관상 명확하지 않다면 소비자가 유리한 편에서 해석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약관 개정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앞으로 약관의 분량이 너무 방대해질 것이라 우려한다. 금감원의 입장은 정확하게 모두 약관에 명시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약관 간소화 추세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생명보험사 한 관계자는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를 참조하도록 했는데 약관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지급금을 일괄지급해야 한다면 앞으로 약관에 산출방법서를 모두 기재할 수밖에 없다"며 "방대한 양의 약관을 소비자도 다 읽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표=보험개발원)
(표=보험개발원)

더욱이 분쟁을 줄이기 위해 분량을 늘리면, 보험개발원의 약관 평가도 점수에서 불리한 요소가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개발원의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 기준에 따르면 △보장내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담보 개수 △본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내용 개수 △약관의 중요 내용을 부적절한위치에 기재하였거나 필요한 설명을 누락한 개수 등에 따라 감점이 된다.

문제는 분량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500페이지의 약관과 700페이지의 다른 분량의 약관을 같은 기준에서 평가해 분량이 많을 수록 감점될 요소가 많은 구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특히 주계약에 특약이 여러 개 붙은 보험상품의 경우, 보험약관에 특약의 개수만큼 개별약관이 첨부된다"며 "특약이 많아 분량이 늘어나면 감점될 확률이 높아지는 불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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