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하고 책상을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 1987년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군부정권은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를 말도 안되는 은폐로 국민들 눈을 가리려 했다.

최근 1987 제목의 영화가 당시 상황을 담아 개봉했다. 일부 허구가 포함되어 있지만 주요 인물 등 대강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뒤쪽 어디선가 아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관람객 대부분이 나갈 즈음에도 흐느낌은 계속됐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가 왜 흐느꼈는지는 모른다. 미처 몰랐던 슬픈 역사에 대한 놀라움 때문일 수도, 젊은 이의 억울한 죽음 때문일 수도 있다.

군부독재와 권위주의에 항거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6.10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 냈다. 불의에 항거한 이한열 열사를 보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불과 30년 전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하는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30년이 흘렀다. 6.10 항쟁 이후 30년 동안 민주화는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로의 퇴행도 있었다. 촛불 혁명은 다시 권력을 시민 품으로 돌려줬다. 민주화의 여정이 계속 한 방향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당연한 명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키고 가꿔야 민주화다.

최근까지만 해도 사회적 의제가 거대담론으로 위에서 결정되고 아래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해당사자인데도 국민의 참여는 배제된다. 아래로부터 위로 민의가 올라가는 공론화가 지체되고 일방의 목소리와 주장만 난무하다.

공론화는 민주화를 위한 촉매제다. 1987 영화에서는 진실을 알리려는 언론의 노력을 보여준다. 지난 30년 언론은 인터넷 매체를 비롯해 양적으로 많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지, 공정한지는 의문이다. 진실은커녕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론의 자유인지 언론기업의 자유인지도 불분명하다.

1987년에 대학에 입학한 청춘은 이제 50세 중년이 됐다. 50대의 정서는 30대, 40대와 또 다르다. 지난 30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987은 많은 이들에게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해이다.

1987의 민주화에 대해 감상과 기념에만 머무를 수 없다.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는 퇴보한 경우도 있었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공동체 의식은 저하됐다. 함께 따뜻한 세상을 이루는 민주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 정치를 통해 실천하고 개선하는 민주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