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IB 2호' 올해 안 불투명…장기 표류 우려
'초대형IB 2호' 올해 안 불투명…장기 표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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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 등 4곳, 발행어음 심사 지연·보류
증권가 "모호한 심사 기준, 이해할 수 없어"

[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닻을 올린 초대형 IB(투자은행) 시대에 먹구름이 꼈다. 초대형IB의 핵심 사업이라 할 수 있는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가 잇따라 지연·보류됐기 때문이다. 연내 '초대형IB 2호' 출범이 사실상 물건너가면서 증권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초대형IB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혁신형 기업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추진한 제도다. 기업활동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맞춤형 금융'을 통해 효과적 자금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대형 증권사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발행어음 심사가 연이어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15일 공시를 통해 "지난 7월 금융당국에 신청한 발행어음 사업 인가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서면 자료 요청 등 조사 진행으로 인가심사가 보류될 것임을 금융당국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미래에셋대우는 발행어음 사업 인가 심사가 중단되면서 초대형IB 일정을 내년으로 미루게 됐다.

금융당국은 미래에셋대우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일감몰아주기 혐의가 인정될 경우, 미래에셋대우에 대한 심사가 장기 표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심사 시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판단을 엄격히 하기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당초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달 30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경징계로 분류되는 '기관주의' 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발행어음 인가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암초를 만나면서,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연내 '초대형IB 2호'에 이름을 올리는 꿈을 접게 됐다. 더구나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에서 한국투자증권에 선두를 내준 터라 이번 금융당국의 통보에 더욱 난처하게 됐다.

KB증권은 그나마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지난 달 13일, 금융위 증선위는 KB증권에 대한 발행어음 인가 안건을 상정해 심의했지만, 결국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에 내년 초 열리는 증선위에서 재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심사 연기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서 금감원으로부터 받았던 '기관경고' 조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같은 날 미래에셋대우에 내려졌던 '기관주의'보다 높은 중징계로 거론된다.

금감원은 KB증권 합병 전 현대증권 당시 윤경은 대표 등이 계열사인 현대엘앤알의 사모사채 610억원 가량을 인수하고, 또 다른 계열사인 현대유엔아이 200억원을 출자한 것이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초대형IB인 NH투자증권은 현재 발행어음 업무에 대한 심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올 2분기 말 현재 3조5600억원에 달하는 채무보증 규모가 인가에 부정적 요소로 꼽히고 있다. 이는 2조원대 중후반 수준인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보다도 훨씬 높아 자본건전성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지난 국정감사에서 "초대형IB 심사에 대주주 적격성 기준 외에 건전성 부분을 판단하겠다"고 밝히면서, 향후 인가 과정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증권은 발행어음 인가 심사 목록에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 부회장이 삼성증권의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지만, 삼성증권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지분을 0.06%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 대주주 자격을 문제 삼았다.

기대했던 초대형IB가 '반쪽' 출범하자, 업계에서는 우려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국내 경제를 이끌어 갈, 성장잠재력이 큰 혁신형 기업에 대한 집중 투자나 자본공금의 한계를 타파하고자 도입된 제도가 다소 불분명한 이유로 표류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지난 달 일찌감치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에 대해 특혜가 주어진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기업금융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초대형IB가 매번 심사 문턱을 넘지 못 하고 있어 답답하다"며 "높아진 진입 장벽과 모호한 심사 기준을 고수하고 있는 당국의 의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초대형IB들에 대한 부정적 요소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향후 '2호' 탄생이 요원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심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허술한 심사 기준을 둔다면 추후 형평성 문제에서 잡음이 나올 공산이 크다"며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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