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시장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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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5일 협정문과 부속서를 공개함에 따라 한미FTA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양상을 보인다. 언론매체에 따라서는 독소조항이 수두룩하다고 각 항목을 나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초점이 되는 조항은 부문별 세이프가드 제한이다.
 
시장의 급변 등 위기 상황에 최소한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 정책을 제한한 것이 우리의 관련 산업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 협정에서 양국이 합의한 세이프가드 제한은 부문별로 다소 차이가 있다. 대중적으로 가장 논란이 큰 농수산 분야에서는 관세가 철폐될 때까지 향후 10년간 단 1회만 사용하도록 회수 제한을 했고 금융 부문에서는 한 번 발동되면 그 기간이 1년을 넘지 못하도록 기간을 제한했다. 시장별 특성이 반영된 차이다.

그 가운데 다른 부문은 큰 이슈가  되지 않으나 유독 농수산 분야는 협상 진행 중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여전한 논란거리다. 우리가 일방적 수입시장이 될 것으로 너나없이 생각하는 농수산 부문의 세이프가드는 ‘긴급수입제한’으로도 표기된다. 금융부문 세이프가드와는 한글 번역에서 전혀 달라지는 셈이다.

한글협정문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지만 한글협정문 공개 지연은 분야별로 그런 표현상의 차이들이 있어서 섬세한 번역이 필요했던 데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규제야 양쪽 시장에 공히 제한하는 것이니 그것만으로 유·불리를 따지는 건 일면 과도한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실상 한미FTA를 반대해온 이들의 논리 속에는 지나친 피해의식도 적잖이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적으로 월등히 작은 시장규모를 갖고 있거나 산업경쟁력에서 크게 뒤처지는 분야는 시장의 안정성이 지속적으로 위협받을 것이기에 불안도 클 수밖에 없다. 농수산 부문이 바로 그런 시장이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처음 금융시장 개방이 미국에 의해 강요되던 1980년대의 금융 부문 종사자들이 가졌던 불안의 크기도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당시 쌀 한 가지 간신히 지켜내며 나머지는 다 내줬다고 아우성을 쳤다. 필자 역시 당시에는 그런 위기감을 공감했었다.

그러나 지금 금융시장은 단계별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웬만큼 갖췄다. 운용미숙으로 한 때 외환위기라는 심각한 국가적 위험을 감수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런 위기를 극복하며 개방된 시장을 운용하는 능력을 길렀다. 이제는 전 세계 투자시장을 향한 발걸음도 잦아졌다. 진정한 글로벌 비즈니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반면 개방 저지를 국가적 지상목표로 여기며 막은 쌀을 비롯한 농수산물은 그동안 개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채 여전히 낮은 경쟁력 상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쌀은 여느 상품과 달리 국가 안보적 성격을 띠고 있어 시장 개방협상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저지선을 구축할 품목이긴 하다.

그렇다 해도 쌀시장에 서둘러 배수진을 치고 보니 다른 분야가 더 힘겨워졌다. 미국 입장에선 실상 소비가 나날이 줄어가는 쌀시장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 터이다. 처음부터 소비가 급증하는 축산물이 더 큰 관심사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아킬레스건을 보여줬다. 그렇게 불리한 협상을 했고 결국은 한미FTA 협상품목도 아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농산물 분야의 세이프가드 제한으로 반영됐다.

우리는 우리 시장이 안전한 시장이기를 원했지만 그 안전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는 오히려 상대의 수에 놀아나는 것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100% 안전하기를 원하면 일체의 변화를 거부해야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은 무기력한 시장, 부패한 시장만 남게 된다.

위험도 없는 시장에 세이프가드는 불필요하다. 세이프가드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역동적인 시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시장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시장이기도 하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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