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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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어려움이 닥칠 때면 흔히 위기는 기회라는 말로 서로를 격려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다보면 오히려 한 단계를 뛰어 오르는 발전의 계기를 갖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시에 안정기의 지속으로 누적됐던 조직 내부적 해이 등 여러 문제들 역시 위기극복 과정에서 해소시킬 가능성이 훨씬 크다. 달리 말하면 위기가 전혀 없는 조직보다는 적절한 위기를 겪으며 이겨낸 조직이 훨씬 건강하여 지속적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오랜 기간 위기를 겪지 않은 사회 조직은 종종 매우 하찮은 외부적 충격이나 내부적 갈등에 의해서도 삽시간에 붕괴한다. 역사 속에서 보면 주변에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제국들이 끝에 가서는 대개 그들 내부 갈등이 원인을 제공하고 결국은 그들보다 형편없이 약해 보이는 피지배 종족들의 생존을 위한 싸움에 말려들며 몰락의 길로 접어들곤 한다.

여러 세기에 걸쳐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했던 로마 제국 역시 주변 적들이 다 사라질 즈음 내적 분열이 발생, 동·서 로마로 갈라졌다. 그러고도 여전히 강한 제국이었던 서로마는 그들이 용병으로 끌어들인 몇몇 유목민족들의 연차적 공격으로 붕괴됐다.
 
그런데 로마를 침공한 유목민족들은 로마인들에 의해 바바리안, 즉 야만족으로 불리며 무시될 만큼 낱낱의 종족 규모도 작았고 조직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로마의 강역으로 유입됐다. 철저히 무시당하며 로마의 용병으로 전투의 최전선에 내몰리곤 하던 그 바바리안들이 각각 종족의 생존을 위해 로마와 충돌했다. 그것도 연차적으로. 그리고 서로마는 멸망하고 비로소 유럽이 탄생했다.

제국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한 때 잉카 마야 등 고도의 문명을 일궜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불과 백년 남짓한 기간에 인구의 95% 이상이 줄어드는 괴멸에 가까운 인구감소를 보이며 쇠락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외부 문명과의 접촉이 끊긴 상태에서 고립 발전하다가 느닷없이 유입된 침략자들을 만났으나 그것을 명확하게 위기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기의 유럽 침략자들은 그 숫자가 당시의 인디언 숫자에 비하면 매우 빈약했다. 함선으로 수송해봐야 그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근대적 무기를 갖고 있었다고는 하나 초기에 위기감을 갖고 조직적 대응을 했다면 일방적 학살을 당할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그 어떤 조직이라도 외부적 위기가 없으면 내부적 분열로 약화되고 그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면 조직적 안일에 빠져 결국 외부로부터의 작은 충격에 의해서도 쉽사리 붕괴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달리 생각해보면 조직이 위기를 재빨리 위기로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조직적 역량을 모으면 위기를 당하기 전보다 월등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큰 위기는 아니라도 소소한 난관들 역시 극복 과정에서 큰 발전을 이루게 하는 계기가 된다. 기업들이 치러야 할 난관 가운데는 정부나 사회 여론 등에 의한 각종 규제도 포함된다.
근래 제조업체들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의 결과로 적잖은 성과들을 일궈냈으며 앞으로는 문명사적 변혁을 초래할 연구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반면 규제를 단지 회피하거나 눈속임하기에만 급급한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쇠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들이 이즈음 치루고 있는 주택금융 규제에 따른 새로운 대출시장 확보 노력 역시 시장의 근본적 변화로 수용하지 못하고 규제만 빠져나가면 된다는 소극적인 회피 노력에만 그친다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칼싸움을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의 칼날을 맞받아치는 것보다 칼끝을 흘려버리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그런 정도로만 대응해서는 변화된 시장 상황을 능동적으로 지배해 나가기 어렵다. 변화를 변화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아쉬워 보인다.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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