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과 금융노동자
금융산업과 금융노동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금융노조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듯하다. 은행 영업시간 단축 주장이 화근이다. 현재 오후 4시30분까지인 은행의 대고객 영업시간을 한 시간 줄여 3시30분까지로 하자고 주장했다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후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빠진 것이다. 은행원들도 지지하지 않는 다니 금융노조의 형편이 남이 차린 잔칫상에 눈치 없이 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다 사방 눈총을 받는 천덕꾸러기마냥 딱해 보인다.

금융노조로서는 실상 좀 억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달포 전 일부 은행이 직원들의 조기퇴근운동을 강제하다시피 벌였고, 기업은행은 근무시간 정상화를 위한 노사공동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좀 뒤늦긴 하지만 조기퇴근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아이디어로 영업시간 단축 보도자료를 낸 것뿐인데 온통 욕을 금융노조가 다 뒤집어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금융노조는 다른 무엇보다 일반 국민들이 왜 금융노조에 화를 내는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오늘 하루 장사하고 걷어치울 판이 아니니까.
지금 대다수의 국민들은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 실상이 어떻고를 떠나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고 앞장서서 나팔 분 세력 중에서도 노동운동 진영은 앞장 선 그룹이다. 그러니 이번 금융노조의 요구는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매우 배부른 짓일 수밖에 없다.

은행원들은 일단 복지환경 잘 갖춰진 안정된 직장에서 편하게 일하는 사람의 전형으로 인식된다. 그들이 과로사를 얘기해봐야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콧방귀 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 국민들이 자칫하면 은행 영업시간을 놓치고 일이 낭패를 볼세라 애를 태우는 일이 흔한 데 그마저 줄이자니 괘씸한 기분도 든다.

영업시간 끝나 은행점포 출입문에 셔터 내리고 나서부터 은행원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는 실상 관계자가 아니면 모른다. 그러니 이해를 구하기도 쉽진 않을 터이다.
따라서 여론의 뭇매를 피하고 싶다면 은행원들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대중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은행원들의 업무가 얼마나 과중한지를 평균치와 최고·최저치를 모두 놓고 설명해야 한다.

금융노조는 과로사를 얘기하지만 충분히 알려진 실증 사례가 별로 없다. 어느 글에선가 보니 2004년의 과로사 사례가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5일제 근무가 정착돼 있는 데 휴식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경쟁국들이 우리보다 근무시간이 더 짧은 것 같지도 않다. 공식적 근무시간으로는 오히려 우리보다 더 긴 나라도 있다. 미국은 5시까지, 복지국가 스웨덴은 5시반까지 영업한단다. 또 싱가포르나 오스트리아는 물론 일부 미국 은행들도 토요일까지 업무를 본다고 한다.
물론 일본과 캐나다가 최근 은행 영업시간을 앞당겼다고는 한다. 그런데 일본은 몰라도 캐나다의 금융서비스 수준은 우리에 비해 많이 낮다는 소릴 듣는다. 우리 금융서비스의 수준을 지금보다 후퇴시키자는 게 금융노조의 바람일까. 그건 아닐 것으로 믿는다.

지금 금융노조가 주장하는 바는 공식적 근무시간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 여건을 바라는 것이겠고 그건 실상 정당한 요구다. 다만 현재 한국의 금융산업이 그다지 여유부릴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글로벌 경쟁은 그야말로 생사를 건 싸움이다. 그걸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피하려면 고사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런 은행의 처지를 나 몰라라 한다면 금융노조는 스스로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행위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은 글로벌 경영 이념이 범람하면서 사라진 구호지만 한 때는 한국 노동운동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건 동시에 공동체에 대해 노동자가 함께 책임지는 세상이기도 할 터이다. 그 꿈이 지금은 어떻게 변색됐든 노동운동이 존속하는 한 포기될 수 없는 목표가 아닐까 싶다. 최소한 단위 노조 아닌 산별노조 운동을 하는 금융노조이기에 더욱이 금융 산업의 현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을 우리는 믿는다.
 
홍승희 <주필>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