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의 정치학
국민연금 개혁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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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는 2007년 4월 2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부결시키고 그 부속적 성격이 강한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만 통과시켰다. 그 과정은 입맛이 씁쓸한 코미디 한편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날 대한민국 국회는 두고두고 정치학의 좋은 텍스트로 남지 않을까 싶다. 그럴 만큼 이날의 국회 결의 과정은 몇 가지 두드러진 학문적 참고 사례가 될 행태들을 보여줬다.

현행 국민연금은 진작부터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다음 세대에 이르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봉급생활자들을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국민의 정부 들어서서는 사회복지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전 국민 가입단계로 서둘러 진입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기초를 놓는 단계에서 장차 올 저금리시대에 대한 대비를 무시한 것이 오늘날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불신받던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 당시의 고금리 구조에 맞춰 기금구성을 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는 “개혁이 없는 경우 기금이 고갈되는 2047년 이후 급여지출이 가입자 소득의 30%를 능가해 미래세대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앞서 국민연금발전위원회는 현재의 국민연금법이 유지된다면 2036년에는 적자로 전환되고 2047년에는 기금이 고갈되며 2060년대 이후에는 급여수급자가 연금가입자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전부터 저금리시대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오긴 했으나 당장 닥친 문제도 아닌 것을 정치적 부담을 안고 손댈만 한 정권은 없다. 그런 현상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필요성은 알지만 어느 정권도 지지도를 떨어트릴만한 정책적 결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임기 말에 도달해 있고 대통령이 소속정당을 탈당하기까지 한 참여정부는 정치적 부담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올해야말로 국민연금을 개혁할 가장 적절한 시기인 셈이다. 차기 정권을 수임할 정당이라면 마땅히 그런 짐을 이번 정권에서 털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한 데 이미 대선은 다 된 밥상으로 여기는 한나라당이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안고 내놓은 개혁안을 거부했다. 개개 의원들의 표밭이 더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이번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해서 비판해온 한나라당이 이날 가장 무책임한 인기 영합적 대중주의의 행태를 보인 셈이다.

국민연금이 개혁되지 않은 채로는 실현될 수 없는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만 통과시키는 과정은 ‘극우와 극좌는 통한다’는 오랜 명제를 재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노조 그 중에서도 민노총과 한 길을 걷는 민노당과 재벌 위주 경제정책을 지지해온 한나라당이 이날 손을 잡고 국민연금 개혁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더욱 웃긴 일은 ‘장관이 미워서 거부했다’는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들이다. 개인에 대한 감정 때문에 미래세대의 짐을 덜고 가냐 마냐 하는 국가적 결정에 딴지를 걸었노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그런 사람들이 이 나라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참 민망하고 슬픈 일이다.

정치권이 국민연금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국민연금 개혁의 시작일 뿐이다. 지금처럼 단순히 가입자가 낸 돈을 수급자에게 전달하는 구조라면 괜한 비용 낭비만 초래하는 셈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개별 가정 내에서 자녀가 부양비를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드리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터이다.

물론 국민연금의 존재의미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미 저금리시대에 든 상태에서 기금의 안정성만을 강조하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기금운용을 한다면 사회복지시스템으로서 국민연금의 효율성을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라는 얘기일 뿐이다. 왈가왈부해봐야 문제는 지금 그 시작부터 정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홍승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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