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 줄다리기
근무시간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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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요시중은행들을 중심으로 조기퇴근운동이 벌어지면서 강제로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 적잖은 부작용도 생기는 듯하다. 그래서 은행원들 사이에선 ‘일회성 이벤트’라는 볼 멘 소리들도 나온다고 한다. 그런 폄하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초과근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는 은행 내부의 불만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표면상 조기퇴근으로 혜택을 입었음직한 은행원들이 앞장서 불만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과도한 업무량의 조정 없이 근무시간만 줄이면 결국 비공인 노동이 늘게 되니 그럴 법하다.

이런 현상은 많은 중소기업에서도 발견된다. 그 경우 경영자가 초과 근무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초과근무수당은 없다. “언제 야근하라고 했느냐”는 반문에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생산라인에서라면 꼭 명령에 따라 초과근무를 하게 돼 있을 터이나 사무직은 다르다.

생산직과 달리 사무직 노동자들의 근무시간과 업무량의 상관관계에 대한 명확한 준거를 찾기 어렵다. 그러니 반드시 야근해야만 할 업무량인지 아니면 정시근무로 충분한 양을 근무시간에 태만히 해서 다 못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실상 직원이 많은 직장일수록 보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대충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사람들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면서 야근 신청도 가장 빈번히 하는 사람을 직접 겪어본 적도 있다. 그런 상사를 만나 도무지 할 일이라곤 없는 데 야근 신청해서 야식비로 자장면 한 그릇씩 먹이곤 사무실에서 한두 시간 노닥거리다 퇴근하는 짓을 몇 달에 걸쳐 해본 적도 있다.

최근 지방공무원 조직이 전격적인 무능공무원 솎아내기 정책으로 소동을 겪었다. 해당 공무원들로서는 속 터지는 일이겠고 또 그런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다보면 부작용 또한 수반될 수밖에 없겠지만 보는 시민들은 대체로 “잘했다”고 보는 듯하다. 그동안 공무원들을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로 본 시민들이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성실히 일해 온 공무원들로서는 얼마나 맥이 빠질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복지부동 무사안일의 표상이 돼 온 공무원 조직에 변화가 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 어쩔 수없는 납세자 시민들의 심정임을 감출 수 없다.

은행원들 역시 그렇다. 은행원들에겐 안 된 얘기지만 창구 이용 고객들의 소감을 듣자하면 “기다리는 고객이 많은데도 가만히 보면 창구 직원들이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노는 것 같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게 설사 일의 내용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지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리 보인다면 아무리 업무량이 과도하다고 주장해봐야 신뢰를 얻기 힘들다.

그런데 그렇게 솎아내고 걸러내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만 모아놓으면 최상의 효율적 조직이 될까. 오래전 조직론인가 하는 분야 연구물을 본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조직에서 매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며 70% 정도는 무난한 정도로 일하고 20% 정도는 빈둥거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럼 그 빈둥거리는 20%를 제거하면 어떨까. 나머지 80% 중에서 또다시 빈둥거리는 20%가 나온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역시 같은 비율로 나타나고.

20%의 예비인력이 있는 조직은 건강한 조직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조직의 안정성을 유지하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얘기다. 효율성을 앞세운 조직운영이 자칫 과도한 다이어트로 사망에 이르는 미녀들과 같은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개인별 업무량이 심하게 편중된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정시 퇴근을 강제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만약 강제 퇴근 이후 불가피하게 업무처리를 하다 과로사라도 한다면 노사간 갈등은 또 얼마나 심각해질까. 그러니 남들이 뭐라 하든 내부에서 적절한 업무량을 가늠하고 분배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강제로 조기 퇴근을 시키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일일 게다. 그런 점에서 기업은행이 시도하는 노사 공동의 노력에 더 관심이 간다.
 
홍승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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