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와 2%의 선택
종부세와 2%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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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주류 언론들의 보도만 접하다 보면 전국이 종합부동산세로 들끓는 듯하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일상에서 만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지난해 처음 시행될 때는 불안해하던 사람들도 올해는 대부분 느긋하다. 지난해보다 과세 대상이 대폭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나도 종부세 좀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비꼬아 말하는 여유를 보인다.

그러나 종부세 과세대상자들은 대개 주변인들이 다 같은 처지다 보니 전국민 모두가 자신들과 동일한 분노를 느낀다고 여기는 듯하다. 올해 종부세 과세대상자인 50만 가구의 거의 대부분이 서울, 그 중에서도 한강이남 3개구에 밀집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동산 외에 증권투자에 있어서도 뚜렷한 계급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 주식수의 45%를 강남 3개구 거주자가 갖고 있음이 최근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식 많이 가진 그들과 종부세 과세에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이 당연히 서로 겹치지만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그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지는 않는다. 세금만 제대로 내면 많이 가진 자체로 비난하지 않을 만큼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체제 안정이 이룩됐다는 의미로 해석할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종부세에 분노하는 2%를 보며 현재의 한국사회와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격동기에 견주어보게 된다. 그동안 꾸준히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얘기해왔지만 이번 종부세 과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계급전선이 보다 명확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최일선에 언론사들이 있다는 점에서도 계급전선의 실체는 보다 뚜렷해 보인다. 군대로 치면 정규군 규모에 해당하는 메이저 언론사들과 게릴라 수준에 불과한 신생 매체들이 대개 앞장을 선 형국이다.

종부세를 내는 계급 2%는 과거 유럽혁명의 열기가 뜨겁던 시절 부르주아 계급의 비율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의 그 숫적 소수였던 부르주아지는 그들이 지닌 영향력을 적극 활용하여 억압받던 일반 민중들을 이끌고 타락한 봉건체제를 무너뜨렸다. 스스로 변혁의 중심에 선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은 새로운 위협을 발견한다. 혁명에 참여했던 민중적 열기는 부르주아지의 일방적 지배를 용납할 수 없었다. 거기에 마르크스 엥겔스 등의 새로운 사상들이 기름을 부었다. 그런 사조를 딛고 러시아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전세계로 혁명이 수출되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유럽의 부르주아지는 매우 영리했다. 혁명세력을 지지하는 민중들이 원하는 것, 즉 사회적 재화의 적절한 분배를 재빨리 부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서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열기를 잠재웠다. 그런 유연성은 결국 현실사회주의와의 60년 투쟁에서 자본주의를 승자의 자리에 세웠다.

한국사회의 2%는 앞으로 어떤 선택들을 해나갈까. 이는 한국사회의 안정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재화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또 사회적 재화로서 그들의 부가 어떻게 분산되어 가는지는 곧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부를 축적한 1세대들은 지연, 학연 등 각종 인맥에 의지하며 살아온 세대다. 그들은 초등학교 졸업식가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이 다음에 다시 만나 이 나라를 함께 짊어지자고 약속하는 교육을 받은 세대다. 그렇기에 혹시 ‘우리끼리’만 서로 믿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계급전선 뒤에 그런 오래 묵은 지연, 학연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다면, 더욱 더 종부세에 저항하는 그들을 향해 저항감을 키울 사람들의 예비된 분노를 잊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화산이 일단 폭발을 시작했을 때는 피하기에 너무 늦기 때문이다.

홍승희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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