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알맹이 빠진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들러리說' 해명
[초점] 알맹이 빠진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들러리說'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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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기자]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한 데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민연금을 통해 도운 것 아니냐는 일부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가장 논란이 됐던 '합병비율'에 대한 해명은 쏙 빠져있어 의구심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최순실 '입김' 의혹 = 국민연금은 16일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한 것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두 회사 주식의 평가금액이 비슷한 상황, 국내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조4000억원)에 달하는 특수성,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주식 가치의 상승 여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최순실씨가 국민연금에 '입김'을 넣어 삼성의 편에 서도록 만들고 그 대가로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청년희망재단 등에 수백억원의 출현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작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된 후 같은해 9~10월 삼성이 약 35억원의 자금을 최씨 모녀에게 송금했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나오자 의혹은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삼성·최순실·국민연금(정부)'간 상관관계를 거론하고 나섰다. 김경록 국민의당 대변인은 "국민연금은 '주주 가치의 감소를 초래하지 않고 기금의 이익을 반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어기고, 2조원대 손실을 감수하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7900억원을 안겨줬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외부자문기구의 반대 권고에도 결국 합병 찬성을 결정한 점, 표결 2일 전 이 부회장을 면담한 점 등 그간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던 부분이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리자 침묵으로 일관하던 국민연금으로서도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 국민연금 "들러리說 사실무근"조목조목 해명 = 국민연금은 A4용지 4장 분량의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이같은 의혹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국민연금은 합병 찬성으로 2조원대 투자손실을 입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합병발표 전일 대비 올해 11월 현재까지의 코스피(KOSPI) 지수가 8.0%(2145p→1974p) 하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물산 합병법인의 주가 하락 (8.2%, 5만5300원→5만750원)도 비슷한 흐름이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외부자문기구가 반대한 것과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은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 방향은 전문기관 의견에 구속되지 않는다"며 비껴갔다. 자문기관의 의견은 각 회사 주주의 입장에서만 고려한 결과이며, 두 회사 주식을 모두 보유하고 여러 주식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데에 따른 영향은 국민연금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SK(주)와 SK C&C 합병땐 자문기구의 찬성 권고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며 "외부 전문기관인 ISS나 기업지배구조원(CGS)의 의견과 다르게 의결권 행사를 한 사례도 많다"고 부연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을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보건복지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부의하지 않은 점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들의 표결 결과 과반이 넘는 찬성이 나와 합병에 최종 찬성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의결권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이 찬성 또는 반대 판단이 곤란할 경우에만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과의 면담도 합병 등 주요 변동사항과 관련한 기업의 주요 경영진 면담은 일반적인 검토 과정의 일환이라며 특별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뿐만 아니라 SK와 SK C&C 합병(2015년 5월), 만도 분할(2014년 7월) 등에서도 최종 결정전에 경영진과 면담을 진행했다는 게 국민연금의 입장이다.

◇핵심인 합병비율에 대해서는? = 그러나 이같은 '결백 주장'에도 국민연금을 향한 눈초리가 곱지 않은 이유는 합병 당시 가장 논란이 됐던 삼성물산·제일모직간 '합병비율'에 대한 해명이 없어서다.

지난해 진행된 합병은 제일모직이 기준주가에 따라 산출된 합병비율인 1:0.35로 삼성물산을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소멸사인 구(舊)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는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를 교부받는 셈으로, 삼성물산에 현저하게 불리한 구조였다.

이 점때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론적으로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하는 것이 이 부회장의 삼성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지분 19.3%를,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06%를 각각 보유 중인 상태였다. 제일모직이 지배하는 삼성생명 또한 삼성전자 지분 7.21%를 보유하게 돼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란 시각이 팽배했다.

삼성물산 지분 11.21%, 제일모직 지분 5.04%를 보유했던 국민연금으로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는 더 낫다고 볼 수 있었다. 국민연금 자체적으로도 적정 합병 비율을 1:0.42로 추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뒤집고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합병비율보다 합병 이후 시너지 효과를 통한 기업가치의 성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치적으로 뚜렷한 이익 대신 막연한 미래가치를 선택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합병 1년이 훨씬 지난 아직까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시너지 효과는 미미하고 국민연금의 손실은 구체적으로 남았다. 결국 국민을 위해 운용돼야할 국민연금이 특정기업의 이익을 위한 들러리를 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은 "합병비율이 중요한 투자 고려 사항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여러 주식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다른 의문점들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그것도 상세히 해명하면서 합병비율에 대해서는 '특수성'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림으로써 궁금증을 의혹으로 키우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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