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회장의 '큰 혼란', 과연 경제적 의미만 담겼을까?
李 회장의 '큰 혼란', 과연 경제적 의미만 담겼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임의적 논평 궁금증 '증폭'...정치적 메시지 있다면 무엇?  
 
[이재호 기자]<hana@seoulfn.com>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이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짧은 말 몇마디가 온나라를 들끓게 하더니, 급기야는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고 말았다. 
문제는 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투명사회 협약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한 이 회장이 "삼성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에는 큰 혼란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 회장이 지니는 무게감 때문에 이 짦은, 그러나 충격적인 발언을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고, 이때부터 일파만파로 파장은 이어졌다.
당시 정황논리로는 경제적 발언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고, 때문에, 언론들은 같은 맥락에서 삼성의 비즈니스와 연관시켜 각종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말이 짧다 보니, 되레 해석은 끝없이 길어지게 된 셈이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가 가전분야에서 손을 떼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고, 이는 일부 언론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대세(정석)로 굳어지는 듯 싶었다.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경제위기론'쯤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힘을 얻었다. 
이같은 해석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이, 이 회장의 발언이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통신 등 주력 업종의 영업 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성 대화(기자)에 대한 답변형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이 회장의 수행원은 다른 날과 달리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어서 기자들과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는 하지만, 이외에는 전경련 회장에 대한 언급말고 다른 주제의 이야기는 없었다.  

■'혼란' 용어 쓰임새 "경제적이기 보다는 정치적"
이 회장의 발언이 '정치적' 의미로 해석(변질)된 것은 이튿날인 10일 한나라당發 논평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한나라당 박영규 수석부대변인이 이날 브리핑에서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대단히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며 "지금까지 이 회장이 던져온 메시지들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적 힘들이 있었다"는 묘한 논평을 한 것.
이 회장의 전자부문 위기론 내지는 경제위기론은 이같은 논평으로 인해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정당인인 박 수석대변인의 이같은 발언은 그야말로 정치적이고, 그래서 해석도 그리 어렵지 않다.
노무현 정권의 현재의 나라 꼴이 말이 아니고, 만약 연말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나라 전체가 결단 날 수도 있다는 표현의, 우회적 어법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박 부대변인은 이날 "(이 회장의) 발언은 경제적 영역을 넘어 정치·사회적 변화를 주문하는 것"이라며 "국민적 공감대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 발 더나아가 그는 "뚜렷한 책임의식과 능력을 가진 정치세력이 새로운 국가경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주도세력의 변화를 주문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까지 말했다. 노골적으로 내놓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아무튼 박 수석부대변인의 논평은 당시 정황 논리와 말 그대로만 본다면, 한나라당의 '임의적 해석'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5~6년 기간 설정, 단순한 경제인의 예지력(?) 
하지만, 이 회장의 발언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과연 경제위기론에 국한 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해석과 무관하게 과연 경제적 의미에 국한된 언급일까, 아니면 정치권, 더 나아가 '침묵하는 다수'(국민)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아닐까. 
이 회장은 평소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어쩌다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짧다. 
그런, 이 회장이 최근 들어 대외활동 자체가 부쩍 빈번해 졌을 뿐 아니라, 언론을 향해 다소 '긴' 이야기를 자주 하곤한다. 대선정국으로 치닫고 있는 묘한 싯점에.
때문에, 그의 발언은 정치와의 함수관계를 내포하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 하나, 반도체등 삼성그룹의 주력 사업에 대한 이야기끝에 나온 말이라고는 하지만, '큰 혼란' 이라는 용어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과 습관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혼란'이라는 용어는 경제적으로 쓰이기보다는 정치 또는 사회적 용어로 많이 쓰인다. 단어 자체의 본질적 의미뿐아니라 뉘앙스상으로도 그렇다. 이는 상식에 속한다.
특히, 5~6년이라는 기간개념도 예사롭지 않다. 경제인으로서의 예지력에서 나온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묘하게도 대통령선거 및 임기구도와 거의 일치한다.   
끝으로, 이 회장의 과거 발언을 통해 그의 정치관을 한번 상기해 필요도 있어 보인다.

■북경發 '정치 3류' 이건희 쇼크와 그의 정치관
정치적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 게 이 회장의 평소 스타일이지만, 지난 1995년 4월 13일 북경발 '이 건희 쇼크'는 지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기자들과의 사적모임에서 엠바고(보도금지)를 전제로 한 말을 기자의 기사 욕심인지, 신문사 차원의 의도된 행위인지, '삼성의 힘'이 작용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당시 某 일간지가 보도함으로써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바로 그 '사건'이다. 당시 이 회장의 발언 역시 짧지만 충격적인 것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정치는 3류도 아닌 4류'라는 것.
현 싯점에서 당시 이 회장의 정치적 발언이 무에 중요하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회장이 평소 정치권에 대해 갖고 있는 속내가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만약 이 회장의 '큰 혼란' 발언이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었다면 무관치않을 수도 있기에 결코 가벼울 수가 없다. 참고로, 당시는 민자당 대선주자로 나와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정권이 3년차에 접어든 시기다.    
아무튼, 이 회장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고, 앞으로도 확실해 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이 회장이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 박 수석부대변인의 논평을 접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 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이 회장의 발언처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웃었을까, 서글퍼 했을까, 울었을까, 노여워 했을까, 아니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이재호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