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정치권을 뒤덮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불똥이 관련 인사 리스트로 확산되면서 금융권이 숨을 죽이고 있다. '팔선녀' 모임이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 했다는 의혹과 함께 한 때 금융권 실세로 불리운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출신 수장들의 거취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부터 금융권은 이미 낙하산 인사가 초래한 재앙의 결과를 뼈아프게 치뤄왔다. 산업은행은 홍 회장 재임 과정에서의 거대 부실과 기업 구조조정 실패의 '책임론'에 휩싸였다. 홍 회장은 논란을 뒤로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자리를 옮긴 뒤 돌연 휴직했고, 그 결과 한국은 AIIB에서 따낸 부총재직을 잃게 됐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이덕훈 행장 취임 이후 크게 불어난 부실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국정감사 자리에서 일부 위원들이 이 행장의 사퇴를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 대표 국책금융기관의 이같은 추락은 낙하산 인사와 정부의 경영간섭 때문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금융권의 낙하산 인사 관행은 최근까지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지난 8월에는 금융·증권 경력이 전혀 없는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 비서관이 한국증권금융 상근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9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의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선임됐다.

지난달 취임한 황록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도 후보 제청 이전부터 유력설이 흘러나왔던 인사다. 이외에도 2명의 내부 출신 후보가 이름을 올렸지만, 우리금융지주 출신인 황 이사장이 최종 선임됐다. 신보 40년 역사상 내부 출신이 이사장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유재훈 전 사장이 물러난 예탁결제원의 경우 금융위 출신인 이병래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의 낙점됐다는 풍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 논란이 증폭되면서 낙하산 인사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다. 정권마다 반복돼 온 '줄대기' 악습이 '수첩 인사'로 정점을 찍으면서, 각종 인사의 공정성여부에 대해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다. 해당 금융기관에 소속된 직원들이 토로하는 분노와 허무함의 강도 역시 여느 때와는 다르다.

이에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는 금융권 수장 줄교체 과정에서는 정치권의 개입이 단절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2대째 내부 출신을 배출한 IBK기업은행장직의 경우,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유력설 등의 낙하산 논란을 끊고 또 한 번 내부 출신 선임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이른바 'KB사태' 이후 지주회장·행장 직의 분리시기를 노리고 있는 KB금융그룹 역시 인사 자율성을 보장받고, 윤종규 회장 주도의 지배구조 체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간 민간 은행임에도 VIP 승인을 받아야만 했던 우리은행장 자리 역시 '민영화 이후 꾸려질 사외이사진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당국의 공언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위기다.

무능한 수장을 타고 개입된 권력은 금융기관의 정상적인 기능 수행조차 어렵게 한다는 점을 우리는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낙하산 관행을 단호히 끊어내지 않는다면 이러한 폐단을 언제고 다시 목격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남은 금융기관 인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라도 전문성을 가진 수장이 철저한 검증 단계를 거쳐 공정하게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