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회장 자리
전경련 회장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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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당은 나서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창당한지 4년도 채 안돼 당을 해체하자고 나서는 판이다. 그런데 재계의 얼굴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자리에는 앉으려는 사람이 없어 공석사태에 돌입했다. 일단 겉으로만 봐서는 감투에 힘이 실리는 정치판과 힘에 감투가 따라가는 경제바닥의 차이를 보이는 것 같아 흥미롭다.
전경련이 처음 발족하던 1961년에는 5.16 직후 서슬퍼런 군부를 상대하기 위해 재계가 힘과 지략을 모아야 할 시기였으니 자연스레 발의자가 총대를 메고 다른 참여자들도 합심협력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을 터다. 그렇게 해서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일본 경단련이 2차대전 종전 후 점령군인 미군과 재계 사이의 가교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권력을 장악한 군부와 상대할 재계의 채널로 전경련을 제안한 그는 그러나 초대회장 으로 딱 1년만 하고는 재빨리 바통을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룹을 승계한 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재계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피하는 인상을 준다.
어떻든 창립 초기의 전경련 회장 자리는 무섭고 단순한 군부 권력의 실세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만한 이들이 추대되는 경향을 보였고 재계의 이해가 걸린 상황인 만큼 대체로 무난하게 자리 이양이 이루어지곤 했다. 물론 고 김용완 회장처럼 한 사람이 최고 6번까지 중임한 예도 있고 고 정주영 회장은 내리 5번 연임을 했을 만큼 어느 때는 하는 사람만 하는 자리같이 보이기도 했다.
전경련 회장 자리는 재계의 추대로 오를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밖으로 소리가 나갈 만큼 반대세력이 있는 이들은 오르기 어렵다. 그렇지만 특별한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면 이렇다 하게 다른 이들이 추대되는 데 딴지를 거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곤란한 경우는 있다. 현재 물망에 오르고 있는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이나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한국의 항공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양사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서 어느 쪽도 전경련 회장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가 자기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전경련인 만큼 자사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데 전경련이 개입된다면 그 즉시 등을 돌리는 게 당연하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그런 경우다. 국민의 정부 시절 전경련이 빅딜을 통해 LG의 반도체사업을 현대하이닉스로 넘긴 이후 그는 아예 전경련에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차츰 전경련의 존립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모양이다. 지금의 재계 위상은 5.16 직후와는 확연히 달라져 국가 권력을 능가할만한 힘을 가졌는데 무슨 이익을 더 방어할 게 있겠나 싶은 것이다.
더욱이 전임 강신호 회장 추대 때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언제부터인가 전경련 회장 자리는 서로 떠미는 자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미 LG가 그렇고 삼성도 그렇듯 대표적인 재벌그룹 총수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전세계에 알려진 인물이 돼버린 국제적 기업그룹의 총수들이 굳이 전경련 회장이라는 감투를 탐낼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저 사교 취미 정도라면 모를까.
5.16 직후의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는 재계가 위기감을 갖고 뭉친 것을 나름 이해할 수 있겠으나 이제 그 시대는 다 지났고 단체로서도 더 이상 할 일이 남은 것도 아닌 데 번번이 회장 추대에 애를 먹으면서까지 단체를 유지할 필요는 실상 발견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조직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조직이 오래 유지되려면 그 내부가 끊임없이 역동적인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그래도 끝내 역할이 다 끝났다는 주변의 진단이 나온다면 그 조직은 소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경련의 회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할 것 같다는 보도들을 접하며 우리 시대 이 사회의 각종 아집, 집착들을 되돌아보게 되니 그것으로 아직 역할이 남았다고 해야 하려나.

홍승희 기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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