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레임덕과 관료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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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hana@seoulfn.com>레임덕에 따른 포퓰리즘인가, 상황변화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인가. 
국가의 주요경제정책을 결정짓는 산실인 재경부가 지난해말부터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이해관계 또한 복잡한 몇몇 주요법안에 대해 석연찮은 이유로 갑작스레 입장을 바꾸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에 따른 의구심과 함께, 정책의 신뢰도 추락에 대한 우려도 함께 대두되고 있다.
우선, 그동안 말썽 많았던 '이자제한법 부활'에 대해 재경부가 반대입장에서 찬성으로 돌아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동안 이자제한법에 대한 재경부의 공식입장은 반대였다.
그런데, 권오규 재경부장관겸 부총리가 21일 국회 재경위 업무보고자리에서 돌연 기존의 입장을 바꿔 "이자제한법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권 부총리는 "법사위 의원 입법으로 이자제한법안이 제출돼 있으며, 재경부도 관련해 진술한 바 있다"며 "과도한 이자가 서민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점, 불법 사채가 노출되는 점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권 부총리의 이자제한법에 대한 이같은 입장변화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권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 당시 이자제한법 부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불과 수 개월만에 정책변경의 이유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정책변경의 이유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상황이 돌변하자 이자제한법 부활에 반대하는 일부 국회의원들마저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통합신당모임 우제창 의원은 "이자제한법 도입은 네가티브한(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재경부의 입장 변화에 실망스럽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서민 금융지원을 위해서는 마이크로 크레딧 활성화나 새마을금고 및 신협의 대출조건 완화 등을 실시해야지, 이자제한법과 같이 포퓰리즘으로 가는 것이 맞겠느냐"며 "원칙에 있어 흔들림없이 가달라"라는 주문을 덧붙였다.
지난해 말 도입이 금방이라도 이뤄질 듯하던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에 대한 논의 분위기는 현재 찾아보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일부 의원들의 문제제기에 권 부총리는 "최근 대법원의 판단과 불법 추심 등 서민 피해 확산 등의 영향이 있었다"며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정리해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얼버무림'으로 들리기 쉬운 해명이다. 
문제는 권 부총리의 '정책뒤집기'가 이 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고액권 발행이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다.
고액권 발행에 대한 재경부의 입장은 반대였고, 논리적 근거는 항상 부동산 문제, 인플레 심리 자극, 금융권의 반발 가능성등이었다.      
이에대해서도 권 부총리는 2년 반쯤 후에 고액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으로 갑자기 돌아서 많은 사람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고액권 문제가 한창 논의되던 지난해말 권 부총리는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에 출석 "그 동안 정부는 고액권 발행에 신중하게 접근해 왔지만, 재경위 논의과정에서 10만원권 발행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어 이를 계기로 발행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권 부총리는 더구나 '고액권의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는 모호한 논리를 앞세우면서 "국회에서 (고액권 발행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재경위에서 고액권 발행 촉구결의안을 계기로 조속한 시일 내에 관계기관들의 의견을 모아 발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 하자니까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정도의 답변으로 들리기에 충분하다. 권 부총리의 입장변화로 그 이후 고액권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현재 고액권 발행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진전된 상태다
인기 없는 대통령, 대권을 앞두고 벌어지는 유력후보들간의 아수라에 가까운 '까발리기 경쟁'등 온 나라가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혼미스런 상황에서 관료들의 처신은 더 없이 중요하다. 경제정책을 주관하는 경제부총리의 처신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권 부총리에게는 정책결정, 특히 정책변경시에는 보다 신중한, 그러면서도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접근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본다. 국회에서 걸러지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만에 하나,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느냐를 놓고 왁자지껄한 와중에 국가의 미래를 결정지을 주요 경제정책들이 특정인의 '무소신'에 의한 '무원칙'때문에 제갈길을 잃는다면, 이는 우리가 매일 부닥치는 정치판에 대한 실망감보다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정서적 불쾌감보다 이성적인 셈으로 잃게되는 구체적 피해가 더 큰 '손실'이기에.        

이재호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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