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식' 성과연봉제, 제2 통상임금 사태 우려
'일방통행식' 성과연봉제, 제2 통상임금 사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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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금융권의 파열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자, 급기야 노동조합과의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금융공기업이 잇따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일방통행식 성과연봉제 도입이 자칫 제 2의 통상임금 사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산은 "직원 동의서 받아라"…노조 배제?

▲ 사진=서울파이낸스DB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노조와의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성과연봉제를 적용키로 결정한 데 이어, 다른 금융공공기관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KDB산업은행의 경우 최근 캠코의 사례처럼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고 직원 동의서를 받아 성과연봉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이미 전날 인사과를 통해 부서장들에게 성과연봉제 관련 동의서를 받으라는 지침이 내려갔고, 오후 4시부터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동의서를 받는 과정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와의 어떤 대화 과정도 없이 직원 동의서를 받는 것은 불법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는 의도"라며 "캠코와 똑같은 전철을 밟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캠코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도입 관련 취업규칙 변경 안건을 의결한 바 있다. 노조의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직원의 70%에게 성과연봉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동의서를 받았다는 게 안건을 통과시킨 근거가 됐다.

지난달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예금보험공사도 노조와의 합의 절차를 건너뛰고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단독으로 성과연봉제에 합의했다는 논란 탓에 내홍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 산업은행도 비슷한 방식으로 성과연봉제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날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삭발식까지 감행하며 반발 의사를 표하고 나섰다. 현재 노조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 찬반투표에 돌입한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총파업을 해서라도 합법적인 절차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무기명 투표 결과를 보면 직원들의 진짜 민심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압박수위 높이는 금융위…IBK기업銀도 속도전?

금융권에서는 갈수록 거세지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일방통행식 성과연봉제 강행 배경으로 꼽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해 "구조조정이라는 시급한 현안을 다뤄야 하는 기관"이라며 "그동안 두 기관의 경영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큰 만큼 조속히 성과주의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BK기업은행에 대해서도 "IBK기업은행은 민간은행과 업무가 가장 유사한 만큼 민간금융사가 참고할 모범사례가 돼야 한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성과중심 문화 확산에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성과연봉제 도입 기관에 대한 인건비 인센티브 지급을 이르면 이달 말이나 내달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당초 연말로 예정됐던 데서 대폭 앞당기는 셈이다.

이에 IBK기업은행도 속도전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IBK기업은행은 그간 노조와 성과연봉제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달 중으로 성과연봉제 도입 방안을 마련해 직원 설득 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최근에는 외주업체를 통해 마련한 성과연봉제 도입 가안을 놓고 지점장급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려다가 노조의 반발로 끝까지 진행하지 못한 바 있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외부업체가 제시한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인 내용을 가감해 이달 최종안을 도출할 것"이라며 "이 최종안이 나와야 노조나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화를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캠코처럼 직원 동의서를 받아 성과연봉제를 강행할 여지가 있는 사측의 모든 시도를 막아 왔다"며 "앞으로도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사회통념상 합리성 적용" vs "법적 강제성 없는 지침"

노동계의  반발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당장 노조를 배제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향후 소송으로 가게 되면 근로기준법 취지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번 사안이 과거 통상임금 사태처럼 줄소송 사태로 번지면 금융권의 노사 갈등이 장기화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노조나 근로자들이 이를 무조건 반대하면서 논의를 거부하면 동의권 남용"이라며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올 초 만든 '저성과자 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에 따르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충족되는 사안의 경우 현행법처럼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고도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 결국 성과연봉제 도입도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에 해당돼, 노조의 동의 없이도 사용자가 강행할 수 있다는 게 이 장관의 해석이다.

이와 관련 금융노조 관계자는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근거로 금융공공기관 사용자가 성과연봉제를 강행토록 하고 있지만, 이를 근거로 사용자가 승소한 대법원 판례는 고작 6~7건에 불과하다"며 "그 지침도 결국 지침일 뿐이기 때문에 대법원으로 가면 분명히 뒤집어질 문제다. 정부가 나서서 노사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 지침은 시행령이 아닌 단순 '업무처리 기준'으로, 법적 강제성은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금융공공기관 내부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한 금융공공기관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는데, 산하 공기업으로서 가만히 손놓고 있을 수 없지 않냐"며 "정작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인 금융당국과 금융노조는 빠진 상태에서, 결정권도 지니지 않은 금융공기업 사용자측만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도입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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