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불안 키운 은행연합회 '모럴해저드'
[기자수첩] 국민불안 키운 은행연합회 '모럴해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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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원칙적으로 은행 직원이 고객정보를 허락 없이 조회하는 건 불가능해요. 조회하는 순간 기록에 남는 데다, 만약 적발되면 징계감이에요."(A은행 영업점 직원)

지난해 말께, 한 은행원에게 지인들의 개인신용정보를 조회하는 경우가 있는지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당시 이 직원은 '과거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가 선을 그었던 '있을 수 없는 일'이 금융권에 또 한번 불거졌다. 개별 은행을 넘어 전체 은행권의 고객신용정보를 관리하던 은행연합회에서다. 은행연합회 직원 11명이 2년 동안 45명의 개인정보를 53차례 무단 조회한 사실이 감사원과 금융당국으로부터 밝혀진 것이다. 

사실상 전국민에 해당하는 금융소비자 규모를 감안하면 적은 숫자지만, 은행 고객들의 개인신용정보가 집중됐던 은행연합회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수치다. 

은행연합회 측은 개인적인 목적이 아니라 전산 테스트 목적으로 조회한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해명한다. 달리 말하면 일부 조회건의 경우 직원의 사적 용도로 활용됐다는 말이다. 단 한건의 개인정보일지라도 직원 개인이 별다른 장애물 없이 무단으로 정보를 열람하는 시스템을 방치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올해 출범한 한국신용정보원의 정보 관리에도 불안감이 싹트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신용정보원은 은행연합회 산하 기관으로, 은행연합회 직원의 절반(80명)이 주축 인력으로 구성됐다. 은행권을 넘어 모든 금융업권의 신용정보를 관리하는 기관인 만큼, 출범 전부터 정보 보안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은행연합회가 주도했던 개인신용정보 관리 기능도 올해부터 이 기관으로 이관됐다. 

그러던 중 모기관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을 통해 금융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정보관리 불감증'이 단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결국 그간 일각에서 제기됐던 '신용정보원이 국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간과할 수만은 없는 얘기가 됐다. 

신용정보원은 당장 올 하반기부터 신용정보 빅데이터를 금융회사에 공유할 예정이다. 올해 금융당국의 주요 과제인 '빅데이터 활성화'가 금융권의 '모럴해저드'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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