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정부發 '저성과자 일반해고' 폭풍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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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탄 쏜 IBK투자證…은행권도 속속 도입 계획

[서울파이낸스 정초원 차민영기자] 올해 금융권에 성과주의 도입을 둘러싼 핵폭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특히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이 '성과연봉제'에 이어 '저성과자 해고지침'까지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은 만큼, 전례없는 노사 갈등이 예고된다.

◆금융권 '일반해고 지침 수용' 잇따르나 

5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투자증권은 업무 성과가 저조한 직원에 대해 일반해고를 진행할 수 있는 취업규칙 변경안을 도입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진행한 찬반투표에서 전 직원의 64%가 찬성표를 던진 결과다.

이에 따라 IBK투자증권은 올해부터 영업 실적이 손익분기점에 크게 못미치거나 업무 성과가 하위 5%인 직원은 저성과자로 분류하게 된다. 사실상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일반해고 취업규칙을 도입한 신호탄이 된 셈이다. 

이같은 결정에 대한 노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는 지난달 7일 IBK투자증권 노조를 소속 지부에서 제명했다. 당초 사무금융노조 측이 취업규칙 변경안 도입에 적극 반대할 것을 촉구했지만, IBK투자증권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소속 지부간부 300여명은 지난달 29일 '일반해고 도입,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정부 지침에 반발하는 결의대회을 개최했다.(사진=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 대외협력국장은 "지난해 11월 본부 차원에서 해당 지부에 쉬운 해고에 대한 반대 투쟁 의사를 밝힐 것을 권고했고, 지부장에게도 징계 조치 관련 경고문을 보냈지만 결국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측은 직원들의 자발적 판단에 따라 취업규칙을 개정했다는 입장이다.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못 따라오는 직원을 분명히 구분지을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일반해고 규정을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에서도 조만간 일반해고를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될 조짐이다. 실제로 전날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소속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들은 '성과주의 도입 방안'을 논의하고,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을 적용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일단 저성과자의 업무 능력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교육훈련을 진행하되, 개선 효과가 없을 경우에는 해고하는 방향으로 합의됐다.

당장 IBK투자증권의 모회사인 IBK기업은행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금융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서도 IBK기업은행의 임금체계가 여타 시중은행들과 비슷한 탓에 가장 변화폭이 클 것으로 거론된 바 있다.

◆전문가들 "부작용 많아" 우려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경우, 금융산업 고용구조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저성과자 해고 관련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히자, 산업현장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민주노총이 최근 공개한 '노동위원회 판정례로 본 일반해고 지침의 위험성' 자료를 보면, 지난해 노동위가 접수받은 저성과 해고 구제신청 건수는 183건으로 2014년(144건)에 비해 27% 증가했다. 이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쳤던 2007~2009년(140건)을 넘어선 수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반해고 지침을 섣불리 도입하면 고용안정성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덕교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금융권 대부분이 성과주의를 지향하고는 있지만, 조직의 존재 목표에 과연 성과만 있을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이윤 추구는 기업의 제1목적이지만 개개인의 소득을 발생시킴으로써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IBK투자증권의 경우 저성과자 선정 기간(1년)이 트레이닝 기간(27개월)에 비해 지나치게 짧아 낙인효과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 연구위원은 "성과와 고용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지만, 일반해고 지침을 처음 도입한 IBK투자증권이 조금 더 긍정적인 롤모델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은행권의 경우 이직시장이 활발하지 않아, 일반해고가 도입되면 인적자본의 선순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점으로 남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직이 활발한 증권사와 달리 은행은 '뼈를 묻는다'는 인식 아래 취업이 이뤄진다"며 "금융산업이 전반적으로 사양산업에 접어든 만큼 어느정도의 구조조정은 필요하겠지만, 명예퇴직이 아니라 일반해고라는 방법으로 직원을 정리하게 되면 국가경제적으로 인적자본을 날려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저성과자에 대한 평가시스템을 견고하게 만든 뒤에 지침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직원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요소도 있는 만큼 신중히 도입해야 한다"며 "일반해고를 추진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성과주의 문화가 충분히 무르익은 다음에 객관적인 기준을 토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고용 지침을 제시하고 나선 것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그는 "최근 정부가 성과주의 문화와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을 인위적으로 적용하라고 푸쉬하는 모습인데, 오히려 노동계의 반발을 부르는 등 득보다 실이 많다"며 "기본적으로 금융회사가 알아서 할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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