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봉제가 신규채용 저해"…은행 임금체계 논의 본격화
"호봉제가 신규채용 저해"…은행 임금체계 논의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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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업무실적과는 괴리를 보이는 은행권의 호봉형 임금 체계를 성과형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호봉제에 따른 비용 부담이 중고령 퇴직자를 양산하고 신규채용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다만, 성과주의 임금 체제를 먼저 도입하고 있는 선진국 은행과의 환경적 차별성을 고려해 우리 금융 환경에 맞는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비정규직·중고령 퇴직자 양산…신규채용 줄여"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5일 서울YWCA회관에서 개최된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세미나에서 "국내 은행산업은 연공형 호봉제에 기반해 직무성과급을 일부 결합하는 성과혼합형 호봉제를 활용하고 있다"며 "고과에 따라 차등해 호봉이 상승하는 경우는 25%에 불과해 기본급에 성과를 반영하는 정도가 낮다"고 분석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살펴보면 금융업의 호봉제 도입비율(91.8%)은 전산업(60.2%)보다 3분의 1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산업의 임금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금융산업의 임금 수준은 2006년 129.7%, 2014년 139.4%로 상승했다.

문제는 호봉제가 견고하게 유지되면서 중고령 임금자에 대한 비용 부담이 확대돼 국내 은행권의 신규 채용은 저조한 반면, 비정규직 활용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업의 근속년수 1년 미만 비율은 8%로 전 산업(14%)을 크게 밑돌았으나, 비정규직 비율의 경우 금융산업이 42.1%로 전산업 평균(32.4%)보다 크게 높았다.

권 교수는 "이같은 임금구조는 숙련된 중고령 근로자에 대한 임금부담으로 50대 초반 퇴직을 패턴화한다"며 "정년 60세 법제화로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이 기대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비용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조기퇴출 프로그램이 더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연공형 임금체계로는 경쟁력을 지속하기 어려우며, 특히 중고령 인력의 고용안정, 양질의 일자리 공급 및 청년층 신규채용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국내은행 성과관리체계 현황 및 개선방향' 발표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이익경비율(판관비/총이익)은 2006년 46.6%, 2010년 42.6%. 2014년 55.0%로 변동성이 컸으나 같은기간 웰스파고는 58~59%, SC는 55~59%, TD는 59~62% 선에서만 제한적인 변동폭을 보였다. 서 연구위원은 "선진국 은행들은 총이익이 감소하면 업무경비가 탄력적으로 줄어들지만, 국내 은행은 그렇지 못한 것"이라며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력이나 대외 경쟁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은행 전체 실적 직원 성과에 반영돼야…'직무급' 확대 고려

이에 은행권의 실적 향방에 따라 직원들의 성과급도 변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과주의 확대가 단기 실적에 집중하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장기 성과를 중심으로한 성과 평가 방식 마련이 주효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직무별로 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직무급'을 확대할 경우 인력의 전문성 확보화 함께 인건비를 축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정호 위원은 "은행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은행 전체 실적에 따라 성과 연봉이 일정부분 연동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직원 육성이나 신규고객 발굴, 자산건전성 관리 노력 등 장기성과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무급 비중을 확대함으로써 임금의 경직성은 축소하되 실질적 근속기간을 확대할 수 있다"며 "절감된 재원으로 신규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등 세대간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성과주의가 승진대상자에 관례적으로 높은 고과를 부여하는 관행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고령이나 저성과자에 대한 관리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수일 보스톤 컨설팅 그룹 대표도 "글로벌 선도 은행들은 채용과 평가, 보상에 이르기까지 전문 직군제를 적용하고 인사 권한을 각 직군에 두고 있다"며 "성과 목표부터 감사들과 상의해서 선정하고 동일 직급이라도 각 직군별 보상체계를 다르게 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채 대표는 "글로벌 은행의 인사부서는 각 직군의 채용 계획을 지원하는 역할만 담당한다"며 "실적과 함께 각 은행 별 역량평가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평가 시스템을 통한 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노조 "성과주의 중시, 고객 손해 초래할 수 있어"

이와관련 노조 측에서는 금융업의 특성과 국내 시장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임금 비교는 문제가 있다는 반박이 나왔다. 금융업의 수익성 악화에는 고정적인 판관비 지출보다 금융 당국의 관치 금융에 따른 손실 확대가 더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김민석 금융노조 정책국장은 "금융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조업과의 단순 비교는 오류가 있다"며 "다른 나라들도 제조업보다는 금융권의 임금이 높다"고 반박했다. 비정규직 규모 확대에 대해서는 "2011~2012년 정부의 잡 셰어링 정책에 따라 경력단절여성 등 계약직 비중이 늘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우리 은행은 선진국처럼 수수료 올리고 점심시간에 문도 닫고 고객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시스템과는 다르다"며 "실적 위주의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면 결국 고객들이 받는 서비스가 악화되는 것이다. 다들 카드 가입 권유하지 누가 동전교환을 하고 예금 업무를 맡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김 국장은 "은행권의 수익성 악화는 과당경쟁에 따른 수수료 수익 축소, 안심전환대출 등 전시성 정책, 조선업 부실 등 관치 금융에 의한 것"이라며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에 따른 손실을 은행에 전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노조 관계자는 "성과주의 임금 방식이 좋다는 한 가지 답만을 제시해놓고 여론을 몰아가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금융 산업의 전산화 기계화로 과거 시스템 관행이 더이상 유지될 수 없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에 대해 노사정 모두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며 "호봉제가 국제적인 경제 상황에서 지속될 수 없다면 은행권 핵심인재들의 직무가 변화할 때, 소수가 감당할 수 있는 은행 업무만 남겨질 때의 보상체계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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