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권의 위험한 줄타기
[기자수첩] 은행권의 위험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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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비 올 때 기업의 우산을 뺏지 말라'는 요구와 '좀비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원칙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게 금융권의 여신심사능력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최근 가계부채만큼이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기업부채 문제를 논하며 언급한 말이다. 은행들이 기업의 장래 건전성을 잘 살펴본 뒤, 가능성 있는 기업에는 도움의 손길을, 가망 없는 기업에는 칼같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일단 업계에서는 이같은 임 위원장의 발언 취지에 십분 공감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금융의 선봉장에 있는 은행의 특성상 여러 가치와 상황판단 사이에서 모순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그 균형을 잘 찾는 게 좋은 은행, 능력있는 은행으로 가는 길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 균형점을 찾는 역할을 은행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냐는 설명이다.

문제는 금융업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이같은 줄타기를 할 여유(?)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은행들이 기업 구조조정에 몸을 사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결국 시중은행들은 지원을 꺼리고, 국책은행이 이른바 '독박'을 쓰는 흐름이 굳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수출입은행이 성동조선해양의 유동성 지원을 '단독'으로라도 책임지겠다고 밝힌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채권은행 여신담당자는 "우리가 일단 살고 봐야지, 섣불리 지원했다가 은행이 망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나서겠냐"며 "지원 규모가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엄살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화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시중은행 한곳이 파산 위기에 처할 경우 국민 혈세는 물론 일반 기업과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가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시중은행 또한 기업 못지 않은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 탓에, 은행권에 '전향적 참여'를 촉구하기도 난감한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금융위기 이전과 같은 '좋은 시절'을 하세월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 분위기 속에서, 금융권과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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