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 부동산시장 찬물 끼얹나
'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 부동산시장 찬물 끼얹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책 방향 급선회…2030 주택마련 어려워질 듯
"기존 주택시장·분양시장·재건축시장 모두 악재"

[서울파이낸스 성재용기자] "빚내서 집을 사라고 권유한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갑자기 대출 정책 방향을 180도 바꾸니 시장 불신만 커지네요." (서울 서초구 B공인 관계자)

1년 전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대출 규제를 풀면서 '빚내서 집을 사라'고 유도하던 정부가 이번에는 '빚내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부동산업계는 불어나는 가계부채 대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훈풍이 불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자칫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 '빚내서 집사라'던 정부, 이제는 대출 옥죄기 

22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금융관계기관은 합동브리핑을 열고 대출자의 상환능력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주택담보대출은 처음부터 △원금과 이자 모두 나눠 갚아라, 두 번째는 소득 범위 내에서 대출 취급이 이뤄지도록 은행들은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철저히 따져라, 세 번째는 은행권 중심으로 돈 빌리기 어려울 경우 상호금융권과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금융회사들의 주택담보대출 심사 방식이 담보 위주에서 대출자의 상환능력 위주로 전환된다. 또 주택담보대출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높아 상환부담이 큰 대출자에게는 분할상환방식을 선택하도록 유도해 과도한 대출은 억제키로 했다.

정부는 상환능력을 꼼꼼히 살피는 것은 대출심사의 기본이라고 강조하지만 이는 지난해 8월 LTV와 DTI 규제를 완화하면서 '빚내서 집 사라'고 유도했던 정책을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지난해 7월 최경환 부총리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수급불균형을 완화하고 주택거래를 저해하는 규제 등을 정상화해 시장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부동산 규제 완화로 가계 부채가 금액 면에서는 조금 늘겠지만, 가계대출구조가 개선되면 리스크가 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정부가 1년 만에 정책 방향을 선회하는 것은 규제를 풀고 기준금리까지 네 차례나 내리면서 돈이 흘러넘쳐 가계 빚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또 하반기 미국의 금리인상이 가시화될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지난 3월 기준 거의 1100조원에 육박했다. 또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8조1000억원 급증해 594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은 1월 1조원대에서 4월 8조5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5월 7조3000억원, 6월 8조1000억원씩 늘어나면서 상반기에만 33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증가액인 37조3000억원에 거의 다다른 수치다.

▲ 사진 = 서울파이낸스

◇ 오락가락 정책에 혼란만…"실수요 위축 불가피"

문제는 정부의 '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이 실효성은 없이 시장의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처음부터 빚을 나눠 갚도록 한다는 정부대책의 취지는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금리로 마구 대출을 해주다가 갑자기 정책을 바꿀 경우 주택자금 마련의 제한으로 이어져 자칫 살아나는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부양과 가계부채 리스크 사이에서 정부가 갈등하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면 두 가지 목표 중 어떤 것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며 "소득심사를 정교하게 해서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규제 때문에 자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인지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는 게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주택시장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기존 주택시장이 신규 분양시장보다 빠르게 반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분양으로 중도금 집단대출을 받을 경우에는 DTI 규제가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주택수요가 규제가 덜한 분양시장으로 몰릴 수도 있다"며 "가뜩이나 기존 주택보다 새 집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한데 이번 대책으로 이 같은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전세난으로 주택구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20~30대 계층이 오히려 주택자금을 빌리는데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하고 변동금리에 대한 부담을 크게 지우면 자산 층보다는 실수요자인 20~30대의 주택 마련이 어려워 질 수 있지 않겠냐"며 "부동산시장에 인식되는 정보에 따라 파급효과가 다르겠지만,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저금리와 전세난으로 분양시장의 실수요자들이 크게 늘어난 상태라 이번 대책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도 "다만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실수요자의 구매심리가 어떻게 변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자만 갚는 거치식 주택담보대출로 내 집 마련을 계획했던 소비자들은 상당한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 강동구 L공인 관계자는 "기존 아파트를 매입하는 이들의 80% 이상이 대출을 포함하고 있고 거치식 대출을 많이 사용한다"며 "투자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실수요자의 위축도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강남권 재건축 단지도 매매가에 비해 전셋값이 낮아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평이다. 주택담보대출의 메리트가 사라질 경우 투자자 중심의 재건축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할 수 있다는 우려다.

강남구 개포동 T공인 관계자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매매가가 높은데 전셋값은 낮아 대부분 대출을 활용해 매입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며 "정확한 시장 반응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악재는 악재"라고 말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