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탈 막아라"…은행들, '계좌이동제' 대비 분주
"고객이탈 막아라"…은행들, '계좌이동제' 대비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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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 이은선기자] 오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계좌이동제를 둘러싸고 은행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개인고객의 비율이 높은 은행들은 이른바 '집토끼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계좌이동제를 기회로 삼아 신규 고객을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저원가성 예금 변동 확대"…시장점유율 바뀔까

▲ 국민 1인당 월평균 자동이체 건수. *한국(14년), 주요국(11년). (표=은행연합회)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일 '페이인포' 서비스가 시행된 이후 시중은행들의 자동이체 해지 건수가 1만건을 넘어섰다.

페이인포는 소비자들이 요금청구기관에 등록된 자동납부 현황을 한 사이트에서 일괄적으로 조회하고 해지할 수 있는 '자동이체 통합관리 시스템'이다. 오는 10월 본격적으로 시행될 계좌이동제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개인금융팀장은 "그동안 자동이체 계좌 이전에 불편을 느낀 금융소비자들의 민원이 다량 접수되면서 계좌이동제가 도입됐다"며 "오는 10월 시행이 본격화되면 3~4개씩 분산된 출금 계좌를 통일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각 은행의 저원가성 예금(LCF)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은행권에서는 계좌이동제를 통해 수시입출금식 예금이 대거 이동할 가능성을 두고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페이인포 서비스 시행 이후 자동이체 해지 건수가 알려지는 것을 꺼릴 정도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은행들 입장에서는 자동이체 해지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업계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집계해 공유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는 좀처럼 변하지 않던 은행권의 시장점유율 구도가 장기적으로는 깨질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지난 3월 기준으로 개인 고객의 수시입출금식 예금 잔액은 226조3000억원으로, 총 예금의 20.7%에 달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같은 경우에는 은행이 한번 주거래고객을 만들면 거의 변화가 없고, 시장점유율도 굳어져 자연적으로 시장독점현상이 생긴다"며 "계좌이동제가 이런 분위기를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중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신용등급을 완화해 대출을 용이하게 해주거나 수시입출금식 예금 금리를 높이고, 지주사가 있는 은행은 계열 카드사의 포인트를 제공하는 등 각종 대응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TFT 꾸리고 대책 마련…계열사 시너지 노린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가장 발빠르게 나선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10일 계좌이동제를 대비한 주거래 통장·카드·신용대출 상품 패키지를 출시했다. 사용 실적을 달성해야 하거나 일정 기간동안 잔액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등 복잡했던 주거래 요건은 급여이체나 공과금 자동이체, 우리카드 결제계좌 중 두 가지 이상으로 대폭 간소화됐다. 3월 말에는 연 2%대 스마트 주거래 정기예금도 추가 출시했다.

패키지 상품 출시 이후 지난 14일까지 개설된 통장은 66만좌 규모로, 1조2000억원의 예금이 유치됐다. 우리 주거래 카드도 11만2000좌가 새로 가입됐고, 주거래 대출은 3만1000좌에서 5000억원 가량 실행돼 반응이 뜨겁다는 설명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오는 10월 계좌이동제 본격 시행에 대응해 다음달에는 2차 주거래 고객 혜택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라며 "1차 주거래 패키지가 결제성 계좌를 겨냥한 만큼 2차 패키지에서는 정기예금에 금리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도 이달 13일 주거래 우대 통장·적금 패키지를 출시했다. 급여이체 뿐만 아니라 카드 결제나 공과금 자동이체 고객에게도 우대 혜택을 주기로 했다. 급여 입금이나 생활비 입출금 거래시 연 0.5%p 우대 이율을 적용하는 등 최대 연 2.8% 금리를 제공하는 주거래 우대 적금도 판매 중이다.

지주사를 갖고 있는 은행들은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통해 고객 잡기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지난 2월부터 테스크포스팀(TFT)을 통해 대응책 마련에 나선 KB국민은행은 이달 주거래고객을 위한 'KB스타클럽'을 확대해 각종 금융 혜택을 늘렸다. 신한은행도 지주사의 주거래고객 서비스인 '탑스 클럽'의 홍보를 확대할 방침이다.

외환은행과 통합을 앞두고 있는 하나은행은 은행 뿐만 아니라 전 계열사 고객을 대상으로 통합멤버십 제도를 마련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금융 계열사 고객이 하나은행 계좌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 계좌이동제에도 대비할 수 있다.

이미 NH농협은행은 지난 3월 농협 내 모든 사업장에서 거래한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범농협카드'를 출시한 상태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통합포인트 제도를 통해 계열사별로 분산된 고객을 공유하고, 계열사간 교차판매를 활성화 시킬 수 있다"며 "신규고객 확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NH농협금융은 자회사 거래 실적에 따라 고객등급을 산출하는 'NH하나로가족고객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고금리 수시입출금 상품에 강점을 가진 외국계 은행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지난 5월 예금 평균 잔액에 따라 하루만 맡겨도 최대 연 1.7%의 금리를 제공하는 '마이플러스 통장'을 출시했으며, 최근 계좌이동제 관련 TFT를 구성했다. 한국씨티은행도 계좌이동제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내달 출시를 목적으로 관련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BNK금융그룹 경남은행과 부산은행은 지난 4월 각종 결제성 거래를 1건만 유지하면 조건없이 월간 10회까지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BNK바람통장', 'BNK단비 통장'을 각각 출시했다. 수협은행 역시 15일 주거래 고객 우대 수시입출금 통장·신용대출·만기적금 패키지를 출시했다.

정희수 팀장은 "계좌이동제의 파급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아직은 각 은행들이 조심스러운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라며 "경쟁이 과열돼 캐시백 등 현금성 금전 혜택을 제공으로 이어질 경우 비용 상승과 수익성 악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영국의 사례를 감안할 때 영업점에서의 불친절이나 실수, 끼워팔기에 대한 불만이나 거래 절차상의 불편으로 계좌를 이동하는 고객이 상당했다"며 "은행권에서도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금전적 혜택 보다는 대고객 서비스 개선에 치중하는 것이 주효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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