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부재 사회의 비극
협상 부재 사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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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도 북한을 6자회담 틀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고 한일간 여러 누적된 현안들을 풀어가야 하고 한미 FTA 협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등 협상이 필요한 사안들은 줄지어 늘어서있다.  국내적으로는 현대자동차, 포스코건설 등 곳곳에서 노사간 충돌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에 바쁘다.

사람 사는 일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라고 본다면 대화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일은 바로 삶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런 기본적인 것에서 전혀 매끄럽질 못하다. 말로 먹고 사는 동네인 정치권마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꼴을 종종 보여주는 사회다. 부모 자식간 대화 단절로 인한 이해 부득은 시공을 초월해 동서고금 어느 때나 있어왔던 일이라 치자.

그렇더라도 개개인 사적 관계나 공적 관계에서 합리적으로 논의하고 적정한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기술은 교육과정에서의 반복적 훈련을 통해 습득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교육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덕분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을 통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문제를 선입관에 사로잡혀 오기 부리고 무턱대고 고개 돌리며 외면하다 가래로도 못 막는, 서로 상처만 키우는 사태를 초래하곤 한다.

지난 주말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노사 갈등으로 인한 피해액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보도하기 바빴다. 그런데 그런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 노조의 요구에 먼저 귀 기울인 것보다는 그래도 이익이어서 그토록 오래 갈등했을까 궁금증이 인다.

물론 회사측 입장에서 보자면 한번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면 매번 그런 기대를 갖고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노조 입장에서도 너무 쉽게 요구가 관철되면 더 요구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평소에 서로 상대를 인정하며 자주 접촉하며 대화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모르지만 단체협상 때만 마지못해 얼굴 마주하며 어떻게든 기싸움에서부터 이기고 보자는 자세로 상대하니 협상이 순조로울래야 순조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협상 부재의 사회 문화가 너무 당연시되다보니 국제 외교에서나 국제 무역에서도 협상의 중요성이 종종 간과되는 듯하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식 습득의 첫걸음이라면 우리는 협상의 중요성을 제대로 모르고 협상의 기술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부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기업들조차 신입사원부터 특정 지역 전문가를 길러내고 그 지역 언어, 문화 습득 기회를 주어 협상력을 높여나간다고 한다. 실제로 국내 주재원으로 온 일본의 상사맨들은 젊은 나이에도 매끄러운 말솜씨와 더불어 한국인들의 여러 습관들을 파악,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빈틈없는 자세로 크고 작은 협상을 해나가고 있다.

외교 분야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일찌감치 한국통으로 키워진 외교관은 주한 일본 대사관 말단 직원으로 몇 년 근무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한국 주재원들의 카운터파트가 되어 한국 관련 업무를 하다 승진하면 다시 주한 대사관 참사관으로 온다.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창 진행 중인 협상 담당자도 정기 인사를 한다면 휘딱 바꿔버리는 강심장을 과시한다. 그렇게 하고도 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는 게 있다. 국내 문제에서부터 협상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외교관들이라고 어디 돌출한 인물들이 나올 리 없다. 그러니 국익의 첨병이 돼야 할 외교관들이 당장 진행 중인 협상의 중요성보다 공정한 인사를 우선시하고 상대는 나를 낱낱이 파악하고 덤비는 데 부족한 준비로 맞상대하는 무모함이 경지에 다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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