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화재] '안전 사각지대' 도시형생활주택의 민낯
[의정부 화재] '안전 사각지대' 도시형생활주택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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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국토교통부

[서울파이낸스 성재용기자] 어설프게 규제의 빗장을 푼 것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불이 나 타버린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는 대폭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아 지어져 사실상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12일 이 아파트 건축물대장을 보면 2011년 9월2일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으로 허가를 받았다. 2012년 2월20일 착공했고, 그 해 10월11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불이 번진 인근 드림타운과 해뜨는마을도 2011년 허가받은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이다.

도시형생활주택은 2009년 도입된 MB정부 부동산 정책 중 하나다. 1~2인가구와 서민 주거안정 대책의 하나로 공급이 추진됐다. 건물 간격이나 주차공간 확보 등의 규제를 받지 않는 주거용 건물을 상업지역에서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내용은 원룸형 오피스텔이나 다가구주택과 같지만 아파트로 이름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에 비해서는 각종 안전 및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대폭 줄었다.

또한 상업지역이다보니 일조권 적용에서도 배제돼 건물 간격이 최소 50㎝만 넘으면 됐다. 10층짜리 '쌍둥이'건물 형태로 지어진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은 간격이 1.5m 정도 밖에 안 됐다. 이 사이 좁은 공간이 마치 연통 역할을 해 드림타운으로 불이 쉽게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재난안전본부 관계자는 "이번 화재는 인접한 건물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피해가 커졌다"며 "건물간 이격거리가 좁아 화재가 쉽게 확산됐다"라고 말했다.

한 건축 전문가도 "지난 정부에서 전세난 완화를 위해 도시형생활주택 건립시 동간 거리규제를 대폭 완화했다"며 "건축설계 측면에서는 용적률 규제 완화보다 더 큰 효과가 있었지만 역(逆)으로 '안전'을 잃게 됐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외벽은 '드라이비트'라는 내부에 스티로폼이 들어 있는 단열재로 마감 처리됐다. 이 소재는 값이 싸고 시공이 간편해 많이 사용되지만 불에 약하다. 또 화재시 유해물질도 다량 방출돼 인체에 유해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는 "드라이비트는 불이 잘 안 붙는 성질이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며 "현존하는 시공방식 가운데 가장 값이 싸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통 마감재가 1㎡당 8만원 수준인 반면 드라이비트 공법을 쓰면 2만~2만5000원 선에 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도시형생활주택처럼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에는 방염 난연 외장재 처리 시공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자료=국토교통부

뿐만 아니라 이번 화재는 1층 주차장에 주차된 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길이 차량으로 옮겨 붙어 삽시간에 피해가 커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건물 1층 주차장은 늘 차들로 붐볐다. 88가구나 거주하지만 주차장 면적은 작아 주차 시비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한 공무원은 "주차장이 부족해 차들이 주변 도로를 메우는 바람에 이전에도 화재시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골칫거리였다"라고 말했다.

특히 차량 화재가 바로 주거시설로 번질 수 있는데도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았다. 주차장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대상은 11층 이상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美 방화협회(NFPA) 조사에 의하면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건물에서 화재 발생시 스프링클러가 화재 확산을 막는 비율이 95%일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다. 스프링클러만 설치돼 있었더라면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참사 이튿날인 11일 오후 화재현장 인근에 있는 의정부의 19층짜리 다른 오피스텔에서도 불이 났으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꺼진 일과 비교된다.

이 같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부는 2013년 주택법 시행령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지방자치단체장의 판단에 따라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의 입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주차장 기준도 뒤늦게 강화했다.

이에 따라 이전에 지어진 도시형생활주택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점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주거지역을 설계할 때는 지진이나 화재 등에 대비하기 위해 건물 사이에 공간을 두는 등의 규제가 있다"며 "이번 화재를 계기로 상업지역에 지어져 규제가 완화된 도시형생활주택의 안전 취약성 부분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제성과 편리성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스프링클러 설치, 외장재 방염난연 소재 사용, 피난계단과 방화문 등 전반적인 안전시설 규정을 적절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방재전문가들은 밝혔다.

주거용건물이더라도 정기 소방검사를 하지 않고 소수만 표본건마하게 돼 있는 법규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소방검사나 점검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기는 점도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전문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 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소음, 주차장 등 건축 규제가 덜하고 이 때문에 공사기간도 훨씬 짧다"며 "화재 등 사고에 취약하다는 점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화재가 처음 시작된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 해뜨는마을은 건물들이 말 그대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시에 따르면 가구 수를 모두 합하면 248가구나 된다. 불은 삽시간에 이 건물들로 번져 4명이 숨지고 124명이 부상당했다. 이재민은 최소 226명으로 추산된다.

도시형생활주택은 150가구 미만의 국민주택규모를 저렴하고 신속하게 공급함으로써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사실상 최소한의 안전 빗장을 푼 결과를 낳아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한편 정부는 오늘(12일) 이번 의정부 아파트 화재 원인과 사고조사를 토대로 아파트 내연재, 스프링클러, 좁은 통로 문제 등에 대한 관계부처 합동 후속조치를 마련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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