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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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고은빛기자] 지난 1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유달리 긴장돼 보였다. 불과 며칠전 진행된 국정감사 때에도 편안해 보였던 모습과도 대비됐다. 부총재보와 다른 금통위원들의 표정도 굳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25bp 내린 연 2%로 결정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와 같은 수준이자 역대 최저치다.

한국은행은 물가상승 압력이 종전 예상보다 다소 약할 것이라는 점, 경제주체들의 심리 개선이 미흡하다는 점을 금리인하 배경으로 꼽았다. 사실 경기회복 속도가 늦어지면서 시장에서도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도 기준금리 효과에 대해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구조적인 변화에 따라 수출과 내수 불균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이 커진 것을 보면 기준금리 인하의 실물경제 파급효과가 약화될 수 있지만 '분명히' 기준금리 효과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미 경제지표 상으로도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이번 결정에 총재의 뜻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금통위의 이번 결정에 대한 외부의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한은의 '독립성'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한은의 독립성 논란이야 한 두해 일은 아니지만 이번 만큼은 정부가 화를 키운 측면이 크다는 게 시장의 일반적 시각인 듯 하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최경환 부총리의 언급과 관련해 '노이즈'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펀더멘털 상으로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인데도 최 부총리의 불필요한 말이 시장 과열을 이끌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부터 최 부총리는 ECB 금리 결정에 대해 "우리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디플레이션 언급, 와인회동 관련해서 "척하면 척" 등의 말로 논란을 키웠다.

실제 최 부총리가 '입'을 열 때마다 채권시장이 강세를 나타내면서, 이주열 총재와 금통위의 영향력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지난 1일 국고채 3년물 금리가 2.219%로 연저점을 기록하는데 9월 금통위 의사록이 군불을 지핀 정도랄까. 

심지어 이달 금통위 전날 한 증권사 채권 운용역은 "이젠 더 이상 금통위 의사록이나 이주열 총재의 기자간담회까지 볼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자조섞인 평가를 내놨다.

이같은 뒤숭숭한 평가는 한국은행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 홈페이지의 첫 배너 문구는 '물가안정 추구' 대신 '신뢰받는 대한민국 중앙은행'으로 대체됐다. 한국은행이 독립성 논란을 잠재우고 시장으로부터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첫 과제는 최 부총리의 '입'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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