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만성화된 은행 위기, 감독시스템 정비로 풀어야
[전문가기고] 만성화된 은행 위기, 감독시스템 정비로 풀어야
  •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산업1팀장
  • seoulfn@seoulfn.com
  • 승인 2014.07.18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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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산업1팀장

위기는 위험한 시기의 준말이다. 위험한 때가 있으면 좋은 때도 올 것이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그러나 국내 은행산업의 위기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위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을 기준으로 볼 때 은행 부문 ROE는 14.6%였는데 2013년에는 2.69%로 급감했다.

더욱이 2007년 1.47배이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2013년에는 0.56으로 하락했다. 시세의 절반 정도를 깎아줘야 비로소 은행을 사겠다는, 은행의 미래에 부정적인 투자자들이 다수라는 의미다. '떨이 산업'이라고 불러 봐도 크게 나무랄 사람이 없을 듯하다.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은행의 비즈니스 영역이 좁고 그나마 최근에는 범위가 더욱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법에 은행의 본업은 예금과 대출, 환업무 등으로 단순하게 규정돼 있다. 겸영 업무는 다른 법률에 칸막이식으로 규정돼 칸막이 안에 들어간 금융회사들만 일정 조건 하에 영업하도록 돼있다.

그밖에 신용정보법이나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서 은행이 지켜야 할 규정들도 불확실하게 많다. 최근 정책 당국이 '안되는 것 빼고 모두 할 수 있도록' 본업 관련 부수업무를 네거티브화 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지켜야 할 규범이 복잡하게 넘쳐나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규제가 많은 건 고도성장의 시기에 은행으로 흘러가는 자금이 넘쳐나고,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얻어 쓰려는 수요자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책 당국도 은행만 철저하게 감시하면 금융안정성이 지켜질 것으로 믿고 무슨 사건만 터지만 은행부터 옭아맸다.

그래도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 밀려들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제는 금리가 너무 낮아져서 돈이 있어도 은행에 예금하겠다는 사람이 줄고 있다. 성장 둔화로 돈을 빌려 쓰겠다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규제의 틈새를 뚫고 들어온 다른 자금 공급자들, 즉 비은행 금융회사들은 늘고 있다. 모바일 등 IT산업이 성장하면서 은행 점포의 효용성이 줄어들고 고객의 마음도 점점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결국 은행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와 아이디어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당국이 컨트롤 타워처럼 알려준 비즈니스 말고, 고객 접접인 현장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아이디어 등이 상품이나 영업에 신속히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복잡한 금융법 시스템과 사전적으로 운영되는 금융감독 시스템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금융감독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불온한 '싹'을 잘라버리는 발본색원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 관련법이 복잡해서 금융 감독기구가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 움직일 도리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칸막이를 일부 조정하거나 완화하는 방식의 이벤트적인 규제완화는 의미가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복잡한 금융 법들을 교통정리하면서 사전적 영업 규제를 완화하되 사후적인 감독을 강화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규제완화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은 댄저(danger)가 아니라 리스크(risk)다. 그리고 그 리스크는 감독기구가 열심히 '관리'해야지, 편하게 '봉쇄'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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