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갑을 논란' 1년, 여전한 갈등의 불씨
[기자수첩] '갑을 논란' 1년, 여전한 갈등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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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남라다기자] '갑을(甲乙) 논란'을 촉발시킨 남양유업 사태가 일어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시 기업들은 '곪았던 문제가 터졌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수직적인 거래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의 전환을 약속했다.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식음료, IT 업계 등에서도 상생협상을 통한 불공정한 거래 관행 개선에 나선 바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 해가 바뀌었어도 갑과 을 사이에는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다.

우선 지난해 상생협상에 착수한 기업들조차 협의 자체가 흐지부지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순당과 피해대리점주간 협상은 첨예한 갈등 속에서 협상이 결렬된 상태다. 아모레퍼시픽, 토니모리 등도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본사로부터 '상생'을 약속받았던 한 대리점주는 "스멀스멀 제품 밀어내기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또 다른 점주는 기업들이 갑을 논란을 겪은 학습 효과로 더욱 더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법 위반 행위를 들춰낼 만한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위법 소지가 있는 내용은 계약서에서 아예 뺐음에도 다른 형태로 이뤄진다. 이메일이나 회사 내부문서를 통해 제품 밀어내기 등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통화기록이 남는 것을 감안해 점주를 회사에 불러 들이는 등 교묘한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 증거 확보를 쉽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 조사 자체가 수년 째 지연되고 있는 데다 피해자에게 혐의 입증 증거자료를 요구하는 공정위의 태도에 대한 불만들이 쌓이고 있다.

게다가 남양유업 방지법이라 불리는 '대리점 보호법' 제정이 지난달 본회의에서 결국 무산된 데에는 공정위가 강력하게 반대한 영향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정위는 남양유업 피해 대리점주는 소수이고, 대다수 도매상들은 지역 토호세력처럼 돈이 많다는 지적을 하면서 반대한 것으로 들었다"면서 "법을 통해 보호받을 권리조차 박탈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갑을 문제는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고질적이다. 그렇기에 공론화만으로 문제 해결이 순조로울 수는 없다. 입법, 행정, 사법부의 후속조치와 함께 기업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맞물려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을(乙)들은 아직 안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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