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리딩뱅크'가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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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기자] 국민은행의 악재가 말 그대로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터져나오고 있다. 올초 불거진 도쿄지점의 자금세탁 의혹은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부실의혹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국민주택채권 90억 내부 횡령사건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예적금 담보대출에 대한 부당이자 환급 허위신고와 베이징지점의 잦은 인사교체에 따른 금융당국의 경고성 발언은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동양그룹에 대한 감독부실로 한차례 곤욕을 치른 탓인지 금융당국은 이례적으로 10여명의 검사인력을 투입해 현미경 검사에 착수했다. 감독당국이 잔뜩 벼르고 나선 만큼 특별검사 과정에서 또다른 비위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앞서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건호 국민은행장을 직접 불러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주문했으며,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회사에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국민은행의 이같은 악재를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리딩뱅크'로서의 위상은 오간데 없이 금융회사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비리 백화점'이라는 불명예까지 얻게 됐으니 그야말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여기에 최근 베이징지점을 열려던 기업은행이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제동에 걸리고 우리 금융당국도 이번 특별검사를 계기로 은행권 전반에 대한 정밀검사에 나설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치면서 국민은행發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때 은행권의 '맡형' 역할을 도맡아온 국민은행이 한순간 '미운 오리'로 전락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국민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까지만 해도 자타공인 '리딩뱅크'로 불렸다. 예금과 대출금리는 물론 은행권 주요 이슈는 국민은행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별 이슈가 아니고서야 경쟁은행들도 '국민은행의 반응'을 먼저 살피던 시기였다.

이처럼 국민은행이 리딩뱅크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주된 배경은 물론 국내 최대 규모의 자산이었지만, 임직원 개개인의 자부심과 조직력이 리딩뱅크의 위상을 지탱해준 또다른 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 시점에서의 국민은행은 '리딩뱅크'와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 불과 5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리딩뱅크'라는 수식어 자체가 금융권에서 종적을 감췄고 언론과 금융시장 어디서도 '리딩뱅크'라는 말은 쓰이지 않고 있다.

종종 수익성과 자산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신한금융지주를 '리딩컴퍼니'로 인식하거나, 3년 이내 외환은행과 통합을 앞두고 있는 하나은행을 리딩뱅크로 보는 시각도 일부 존재한다. 최소한 국민은행이 더이상 자타공인 리딩뱅크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은행이 브랜드 인지도나 자산규모에서 '1위 은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리딩뱅크로서의 위상추락은 자산 규모보다는 외부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최근 5년간 국민은행은 국내 은행들 가운데 유독 CEO리스크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8년 KB금융지주 출범을 앞두고 벌어진 강정원 전 행장과 황영기 전 회장의 난타전과 이후 불명예 퇴진은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의 최측근 인사였던 어윤대 전 회장이 임기중 소위 '4대천왕'으로 군림했지만 퇴임 이후에는 금융당국의 사정칼날 위에 서게 되면서 국민은행의 이미지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

주인없는 금융회사의 '숙명' 쯤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난 5년의 시간은 대내외 이미지는 물론 내부 조직력에도 적잖은 상처를 남겼음은 분명해 보인다. 막대한 자금을 다루는 금융회사의 경우 내부 조직력 약화와 직원들의 사기저하는 곧바로 크고작은 사건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취임 직후의 강경노선을 버리고 임직원들에게 '주인 의식'과 '조직력 강화'를 주문한 것도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리기 위함일 것이다. 국민은행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고는 결국 CEO리스크에 따른 조직력 훼손이 발단이 됐으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장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맥락이 같다.

단순한 금융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의 문제가 아니다. CEO 선임 때마다 불거진 낙하산인사 논란과 정권교체기 자행되는 금융사 길들이기식 사정칼날은 금융사 임직원들의 보신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올해에도 일부 금융사 CEO의 경우 정치권에 밉보였다는 이유로, 혹은 금융당국의 눈밖에 났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가 반복됐다.

금융당국이 전 정권의 실세로 채워졌던 '4대 천왕' 시절에는 뭐하다 이제와서 호들갑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이같은 관치(官治) 구태가 계속되는 한 제 2, 제 3의 '비리 백화점'은 언제든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표방하는 '한국금융의 삼성'은 커녕 국내 '리딩뱅크'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은행의 현 경영진이 지난 과오에 대해 직원 개인의 비위나 전임 CEO에 책임을 떠넘기려한다면 이 또한 공감을 사기는 어려울 것이다. 취임 당시 전임 사장, 전임 부행장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낙하산 논란에서 비켜설 수 있었던 만큼 보다 책임있는 자세로 난국을 극복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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