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책임이 부른 동양사태의 비극
[기자수첩] 무책임이 부른 동양사태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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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최재연기자] 동양증권 직원이 고객 피해를 우려하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대규모 자금 이탈과 불완전판매 관련 소송, 계열사 법정관리를 둘러싼 내부 갈등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동양그룹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동양증권 모지점의 상품판매 담당 직원으로 최근 대규모 자금 이탈로 심리적 압박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해당 직원이 한 때 불완전판매에 따른 부담감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달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이 동양그룹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에서도 직원들에게 부실 계열사의 기업어음(CP) 판매를 지시한 사실에 비춰 이같은 추측은 설득력을 갖는다. 정 대표는 이 자리에서 "동양그룹 계열사의 부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동양증권측은 '우리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앞서 같은달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계열사 법정관리 신청은 없다'는 발언을 믿고 따른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룹 경영자의 성급한 약속이 계열사 사장을 거쳐 말단 직원까지 이어져 애꿎은 고객들의 투자를 부추긴 셈이다.

현 회장은 투자자 및 동양증권 임직원의 항의에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경영권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해온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 철회 요구에 대해서는 끝까지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수조원대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막대한 피해는 불가피해진 셈이다.

사실 동양그룹의 위기는 현 회장 일가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구조조정 실패 등 경영 능력 부재로 촉발됐다. 그러나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운 데는 금융당국의 책임 역시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동양증권이 정크본드 수준의 계열사 CP과 회사채를 마구 찍어내는 동안 금융당국은 팔짱만 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자 부적격 등급의 계열사 회사채와 CP 등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융투자업 규정도 원래 지난 4월부터 시행될 계획이었으나, 동양의 요청에 따라 6개월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간 '빚 돌려막기'로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금융당국 역시 이번 사태의 '공범'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까닭이다.

자의든 타의든 동양그룹과 동양증권, 금융당국 모두가 이번 CP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엄중한 처벌 또한 피하기 어렵다. 투자자들의 경제적 피해는 차지하더라도 이번 사태로 증권업계에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워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증권사들의 숨통을 더욱 조인 데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이제 동양증권은 '뱅크런'에 이어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줄소송을 치러야 한다. 정부는 또다시 이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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