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멍 숭숭난 대기업 일감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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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현수기자] 재벌 총수들의 사익편취 목적의 일감몰아주기를 방지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입법예고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시행령 초안은 비상장사의 경우 총수일가지분율 20% 이상, 상장사는 30% 이상을 규제대상에 포함시켰다. 단 내부거래금액 50억원 미만과 내부거래비중 10% 미만을 모두 충족할 경우 제외된다.

내용이 알려지자 야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규제 범위가 축소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구분한 '이중잣대'부터 문제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5일 논평을 통해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20%를 넘는 경우에는 당연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며 "또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20%미만이더라도 내부거래비중이 일정규모 이상이라면 원칙적으로 규제범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 또한 "공정위는 상장사에 대해 30%의 완화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재계가 비상장회사에 대해서도 기준을 30%로 완화할 것을 요구하도록 하는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고 말았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이번 공정위 시행령 초안에 따라 규제를 받는 기업들은 10% 이하로 낮다.

본지의 조사결과, 자산총액 5조원 이상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 41개 가운데 36개 그룹의 129개(상장사 23개, 비상장사 106개) 계열사가 규제대상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총수 있는 재벌그룹 계열사 전체(1255개)의 10.3%에 불과하다.

이를 10대그룹으로 좁히면 규제대상은 더욱 줄어든다. 총수가 있는 민간 10대 그룹 소속 계열사 576개사 중 규제망에 걸리는 곳은 44개(상장사 6개, 비상장 38개)로 7.64%를 차지한다.

시행령 초안에 따라 규제망을 벗어나는 대어(大魚)급 기업들도 상당하다. 이들 기업들은 내부거래비중이 높거나 내부거래금액이 큼에도 불구하고 감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삼성그룹에서는 내부거래비중 72.45%(내부거래금액은 3조2051억원)에 달하는 삼성SDS가 총수일가지분이 17.17%에 그쳐 비상장 하한 기준 20%를 아슬아슬하게 밑돌았다.

현대차그룹에선 내부거래금액이 4조195억원인 현대제철이 총수일가지분율이 12.52%여서 벗어났고 내부거래금액 1조2793억원인 현대하이스코도 지분율 10.1%로 제외됐다.

롯데그룹 또한 롯데정보통신(내부거래비중 80%, 금액 4099억원), 롯데상사(내부거래비중 61.6%, 금액 6915억원)와 함께 그룹 내 핵심계열사인 롯데쇼핑 또한 상장사 하한인 30%에 조금 못미친 27.74%로 규제대상에서 빠졌다.

이밖에 현대중공업그룹에서는 현대중공업, GS그룹에서는 GS건설, 한진그룹에서는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이 규제망을 벗어났다.

규제망에 포함됐다고 해도 부당내부거래로 제재를 받으려면 거쳐야할 과정도 많다.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대해 '원칙적 허용, 예외적 적용'을 여러차례 강조해왔고 입증책임도 스스로 갖는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문제삼는 부당내부거래는 △정상적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합리적 경영판단을 거치지 않은 상당한 규모의 거래 △총수 일가 등이 소유한 계열사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등이다. 더불어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 등의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총수사익편취 규제의 예외다.

사정이 이런데도 '목마른' 재계는 총수일가지분율 50% 이상을 규제하자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같은 재계의 요구가 관철된다면 10대 그룹 중에서도 규제대상기업은 23개로 또다시 반토막이 난다. 가뜩이나 경제민주화가 후퇴했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만큼 재계 스스로 제살 깎아먹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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