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증에 걸린 경영방식의 탈피
기억상실증에 걸린 경영방식의 탈피
  • 최갑률 신협중앙회 조사연구실장
  • seoulfn@seoulfn.com
  • 승인 2013.08.0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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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갑률 신협중앙회 조사연구실장
2007년 학술지 '사이언스'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은 미래를 상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영국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올해의 10대 과학' 중 하나로 발표한 바 있다. 이 내용은 '눈먼 시계공'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기억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말과 겹쳐진다.

기업경영도 인간의 일인지라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기업경영에서 경영자가 기억의 포로가 되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먼저 성공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과거 성공의 기억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새로운 상황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실패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과거의 실패요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다. 전자는 기억의 또렷함 때문에, 후자는 기억의 흐릿함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결국 모두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경영은 자본주의 경제의 주축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에 따라 큰 영향을 받아 왔다.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기본속성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늘 지속적인 성장을 전제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사는 성장과 침체의 사이클을 반복해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현대 경제사를 보면 버블의 확대와 수축, 즉 위기의 발생과 극복을 반복해 가면서 경제가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그 사이클은 대략 5~6년이 된다.

문제는 2008년 이후 버블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전세계적인 위기의 근저에는 과도한 부채와 자산버블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 일본의 양적완화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몇 년 전부터 2013년에서 2015년 사이에 버블이 - 대공황과 대폭락으로 표현될 정도로 - 크게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버블붕괴론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고장난 시계는 정확하게 두 번만 맞는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의 기억을 애써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러한 버블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금융기관에서는 유독 성장만 염두에 두고 경영을 하는 것 같다. 마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하는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말이다.

우리는 15년 전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얼마나 많은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하에 사라졌는지를 기억해낼 수 있다. 최근 금융 산업 전반에서 이익구조에 따른 순이익 감소로 인해 큰 위기감을 갖고 있다. 모두 버블의 확장 및 지속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위기가 도래했을 때를 대비하지 못한 결과라 생각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의심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베이컨(F.Bacon)은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은 회의로 끝나고 기꺼이 의심하면서 시작하는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끝내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의 기억이 뚜렷한 사람은 버블이 조만간 터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우리로 하여금 성장의 마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성장의 마법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운사이징 밖에 없다고 본다. 이것을 무작정 지속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제순환 사이클에서 최악의 국면을 피해 갈 수 있도록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운사이징은 우선 경영자의 욕망을 축소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 측면에서는 다른 기업보다 더 큰 자산규모 유지, 더 많은 순이익 발생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남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다음에 기업은 자산구조와 비용구조를 다운사이징 해야 한다. 금융기관을 염두에 둘 때 자산구조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잠재적 부실자산을 털어내고, 고비용 부채를 축소하는 것이다.

또한 비용구조는 점포축소와 인원감축과 같은 방식을 염두에 둘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과거의 기억은 성장잠재력을 축소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하라고 한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튼튼한 고객기반과 충성스런 직원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도쿄대학교 강상중 교수는 한 신문사와의 대담에서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세계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있다"는 '거듭나기'에 대해 강조했다.
 
그런데 이러한 거듭나기가 꼭 생사의 갈림길까지 가야만 가능한 것일까? 지혜의 상징,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반드시 깊은 어둠을 지나야만 비로소 날개를 펴는 것일까? 에스파냐 출신의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반복하는 운명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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