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경제학
불평등의 경제학
  • 홍승희
  • 승인 2005.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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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이 심각하거나 정정이 불안한 나라들은 대개 세 가지 유형 정도로 대별된다.

첫 번째 유형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갑작스럽게 정치체제가 바뀌는 과정에서 힘의 공백이 생긴 경우, 즉 내·외 정치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옛 소련연방이 붕괴하면서 탄생된 독립국가연합 내 몇 개 국가들이나 미국의 침공으로 정치권력의 이동이 불가피해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이 이에 해당된다.

두 번째 유형은 아프리카에서 흔히 발견되는 종족간 갈등에서 출발, 각기 다른 외세를 등에 업고 내전으로 치닫는 경우다.

그 분쟁의 뒤에 도사린 외세들은 무기 판매나 자원 독점 등으로 이득을 얻는 데 반해 역사 이래 그래왔듯 죽어나는 건 일반 백성들이다.

세 번째 유형은 앞서의 두 가지 중 어느 한 길을, 혹은 두 길을 다 거친 후 극심해진 정치·경제·사회적 불균형으로 사회 내부의 운동력이 정점에 이른 경우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중남미 국가들이 끊임없이 혁명과 쿠데타에 시달리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되겠다.

인간 사회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법칙을 복사한 듯한 일반화된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사회법칙은 없는 것이다.

그런 법칙 중 하나가 완전한 균형상태에서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며 불균형상태가 되면 균형상태로 가기 위한 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불균형 성장론을 토대로 계획적인 불균형 상태를 만들어 사회적 운동력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경제개발계획의 성과를 맛봄으로써 그 법칙성을 충분히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불균형에 무감한 사회가 돼 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이 또 하나 가르치는 것은 그 불균형 상태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회현상적으로는 전복의 기운이 커진다. 그 상황에서도 불균형상태가 완화되지 않으면 결국 ‘혁명’을 초래하거나 무기력이 지배하는 사회로 향한다.

이런 사례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한국 사회의 불균형상태는 나날이 심각해져 가고 있다.

불균형 상태의 고착화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표면적인 안정 분위기 내면에 흐를 기운이 자포자기적 빈민계층의 양산이 될지, 아니면 폭발적 혁명의 기운이 될지 알 수 없게 됐다는 점이 더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과거 우리 사회를 흔들었던 혁명적 분위기는 실상 중산층 출신의 계몽주의적 지식인 집단들에 의해 촉발된 셈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논리적 완벽성에 매료된 혁명론은 현실적합성이 부족했고 따라서 사회 하부로부터 큰 힘을 받아 사회를 뒤집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이론을 토대로 한 목적의식적 행동인만큼 사회적 예측이 가능했다.

또 주력의 성격이 그런만큼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의해 혁명적 지식인 계급의 상당수는 미리 전향을 선언하고 현실 정치 일선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개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절박함 없이 시작한 운동의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그러나 만약 또다시 이 사회에 혁명의 기운이 일어난다면 그 때는 양상이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경우 행동에 나서는 이들은 의도하고 혁명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행동에 나서는 것이 될 터이고 그런 만큼 힘이 결집됐을 때 사회를 뒤집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끔찍한 일은 어쩌면 극빈층으로 내몰린 채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이들이 형성하게 될 슬럼지역의 확대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때의 사회적 재화는 더 이상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소수의 무한정한 욕망을 쫒아 더 많은 이들을 희망없는 삶으로 내모는 잔혹한 무기일 뿐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창의성과 열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발전 대신 퇴보의 역사만이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들이 욕망하는 것은 그런 사회인가.

그게 아니라면 개개인들은 저마다의 욕망에 충실할지라도 그들의 이성이 표출돼야 할 경제단체들만은 소속된 개체의 욕망 대신 그들 기득권의 바탕인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지금 시점에서의 적극적 분배는 실상 기득권을 더 확실히 보호하는 방법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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