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늦은 시대 인식
한 박자 늦은 시대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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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역사인식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우리 사회 전반의 시대 흐름을 읽는 눈은 과연 지금 어느 수준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아버지 박정희의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의 딸 박 후보가 박정희 시절 발생한 일들에 대해 변호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어 보인다. 박정희의 후광 없는 박근혜는 어차피 생각하기 어려우니까.

그런데 그런 역사 인식의 한계가 박근혜 한 사람만의 문제일까. 그리고 지난 역사의 인식에서만 그런 한계를 갖는 것일까.

박근혜를 지지하는 부동의 지지층 20 몇 퍼센트인가 하는 이들은 아마도 그와 동일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고 봐야할 터다. 게다가 인터넷 뉴스에 붙는 댓글들을 보자면 그들 모두가 소위 말하는 알바(아르바이트로 진보적인 글에 악성 댓글을 다는 이를 일컫는 속어)도 아닐 터다.

그런 막힌 시대 인식이 국내 정치의 흐름을 읽는 수준에만 머문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지금 세계가 어떻게 요동치고 격동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원인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금 유럽이 겪고 있는 재정적 어려움, 경제적 혼돈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보고 있을까. 미국적 시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유럽 여러 나라들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고 그 여파는 세계 경제 전반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출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며 한길로 매진해온 한국 경제에도 어두운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 그런 현상은 잘 읽고 있다.

문제는 그 현상으로부터 미래를 어떻게 읽을 것이냐다. 19세기식 영토분쟁에 빠져드는 듯 보이는 동아시아 한복판에 위치한, 그것도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체제로 분단된 채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를 앓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려 드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긴 하다.

하지만 거기에 미국식 효율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한국의 지도층의 식민지 엘리트 근성이 더해져 부분적 사실을 과장, 왜곡해 진실로 호도하고 그것을 권력에 장악됐거나 유착된 메이저 미디어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대중들의 정보 취득을 방해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자칫 함정에 빠져들 수도 있게 한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이미 다 이루어진 듯 보였던 유럽의 통합은 지금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통합의 길로 꾸준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참가국들이 욕심 대신 이성의 끈을 단단히 붙들고 가야 할 것이고 그 일은 경제적 곤란이 커져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자국 이기주의의 유혹을 견디며 통합을 위한 양보를 어디까지 해나가야 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다 알 수 없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은 표면상 유럽의 통합 노력을 지지할 테지만 그 복잡한 속내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이런저런 내외로부터의 유혹과 때로는 겁박(?)으로부터 자신들의 목표를 지켜내기 위해 철학적, 논리적으로도 더 치열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그들은 지금 미국이 세워놓은 시장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적 성장이 사회적 발전으로, 나아가 성장과 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할 개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새로이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과 갈등은 다만 유럽만의 것은 아니다. 유럽은 그나마 현시대 인류 가운데서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대표적 사회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유럽안정화기구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만 해도 유럽의 이성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전히 남북의 갈등을 심화시키기에 골몰하는 집단이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고 최고통치자의 뒷감당을 생각지 않는 즉흥적인 영웅주의에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환호하는 시대에 머물고 있다. 정치가 복지를 말하지만 모든 기득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위에 그들에 의한 시혜적 온정주의에 기대는 것을 복지라고 치장하는 말잔치 속에 시대를 읽고, 미래를 내다볼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단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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