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강퍅해지는 사회의 처방
나날이 강퍅해지는 사회의 처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을 앞둔 정가의 요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소통’이더니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형제와 불심검문 등이 이슈로 떠오른다. 다른 듯 닮은 이들 이슈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얼마나 강퍅한 사회로 나아가는지를 가늠하는 주제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굳이 정치권이 소통을 이슈로 내거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지금 불통시대를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저마다 내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질 않으니 소통이 되려야 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가슴에 ‘화’를 키우며 누군가 내말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데 서로가 그러고 있으니 남의 말이 귀에 닿을 겨를이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눈귀 거슬리는 짓이라도 할라치면 극단적인 폭언, 폭행이 난무한다.

선거전에 뛰어든 정치인과 그 집단들의 난폭한 발언들도 결국 그런 세태와 엇비슷한 보폭을 보인다. 표가 될 만하면 뒷감당은 그야말로 뒷날로 미루고 일단 토해내고 본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먼저 말을 꺼내 사회적 논란을 점화시킨 사형제 문제는 물론 단순히 표만 의식해서 나오는 소리는 아닐 터다. 철학의 문제요, 사회문제의 원인을 보는 시각의 문제다. 법을 강화하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단순 논리가 대중의 입에서 말이 되어 나온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들을 얘기지만 그게 한나라의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이의 입에서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상 요즘 연일 매스미디어에 떠오르는 어린 여아 성폭력 사건 등을 보노라면 보통 사람들 누구라도 ‘저런 죽일 놈’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장기간 격리토록 중형에 처하는 것과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오심이나 인간의 실수를 다시 만회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사형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0여년 집행을 삼가고 있던 사형 집행을 재개하라고 쉽사리 말할 사안은 아닌 것이다. 사형제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은 근래 급증하는 강력범죄의 예방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형제의 부활이 강력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통계적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는 점은 간과됐다. 범죄예방의 실효성을 먼저 의심해봐야 한다.

소위 선진국이라 분류되는 나라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형제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가 그래서 강력범죄율이 낮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유럽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죄수를 가두고 또 사형시키는 미국의 치안이 유럽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형제를 옹호하는 이들이 근거로 들고 있는 하나의 예는 1981년 한해 700여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진 텍사스가 그 이듬해 사형을 집행하면서 살인사건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범인들이 범죄를 덜 저질렀다기보다는 대개 갱단 간의 전쟁이 다른 지역으로 분산, 이동해간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형제가 있는 아랍권에 강력범죄율이 낮다고도 한다. 그런데 형벌이 무서우니 여전히 부족전통을 지키는 이들 속에서는 범죄에 대한 처벌을 부족 내에서 해결하거나 범죄의 흔적을 사막에 묻어버림으로써 공권력의 간섭을 벗어나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가 들리니 역시 믿을만한 통계는 못된다.

체벌이 엄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더 반듯하게 자랄 것이라 믿는 이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그런 가정 아이들은 저희끼리는 매우 심하게 싸우다가도 부모 앞에서는 단합해 눈속임하는 경우도 현실에서 본 적이 있다. 사회적 범죄라고 크게 다를까 싶지 않다.

게다가 불심검문의 부활이라, 개인적으로 불쾌했던 기억도 있다. 야근하고 피곤에 지친 새벽시간 귀가길에 이유없이 차를 세우며 신분증을 보잔다. 솔직히 경찰관인지 의경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젊은 사내가 서서 신분증을 보자는데 다른 무엇보다 여성으로서의 불안감이 확 밀려오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는 근거를 따지고 드니 딱히 답도 못하면서 공무집행을 방해할 거냐고 겁박도 했었다. 규정을 엄격히 지킬 것이라지만 정말 이런 일이 재발 안 될까 모르겠다. 일설에는 불심검문 6만 건에 강력범죄 예방 1건 정도의 실효성뿐이라던데.

이미 강퍅해진 가슴으로는 그 어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차가운 이성을 향해 가고 있는가. 너무 가슴만 뜨거운 것은 아닌가.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