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선임, 정부 입맛 따라 가나
은행장 선임, 정부 입맛 따라 가나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2.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감원, 정관 변경 3개안 검토...'자율' 퇴색 '자리 만들기' 의혹
일부銀 금감원과 조율안돼 주총일자까지 연기

은행법 개정에 따라 은행장 선임 변경 방식이 세 가지로 압축되는 가운데 정부가 정권말에 맞춰 다시 행장 인사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이 금융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4월 금감위는 은행장 선임과 관련,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된 은행장추천위원회(이하 행추위)에서 맡는다는 24조 조항을 은행법에서 삭제했다. 은행장 선출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짐에 따라 각 은행들은 올해 이사회와 주총을 통해 새로운 선임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새로 시행된 개정 은행법에 준하면, 은행장 선출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은 각 은행의 손으로 넘어갔고, 앞으로 은행장 선출과정에서 이사회의 역할과 몫이 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올 주총을 앞두고 돌아가는 상황은 이같은 관측이 빗나가고 있다.은행법 개정으로 명목상 은행장 선출 방식이 각 은행으로 넘어갔지만 경험도 전례도 없는 은행들이 스스로 독자적인 은행장 선출 방식을 시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이에 따라 금감원과의 조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현재 금감원과의 조율을 통해 거론되고 있는 선임 방식은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이전 행추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예전처럼 사외이사가 전권을 가지는 방식이다. 다음은 사외이사, 은행밖 금융전문가, 은행 내부직원이 각각 위원회의 3분의 1씩을 맡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마지막 방식은 행내 인사를 제외한 사외이사와 외부 금융전문가가 반반씩 위원회를 차지하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은행권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부분은 은행밖 금융전문가 그룹. 정권말에 갈 곳이 없어진 관료등 정부측 인사들의 자리마련 배려 차원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는 것. 은행권 한 관계자는 임기말 인사의 뒷자리도 봐주고, 은행장 선임에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 아니겠냐고 감독국의 숨은 의도(?)를 꼬집었다.

실제로 새로운 선임 방식에 대한 논의는 금감원 내에서 먼저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월초, 금감원은 시중 몇몇 은행들에 3월 정기주총 일자를 연기할 것을 주문했다. 요청 배경은 은행장 선임 방식 변경 등 새로운 의제를 정관 개정에 반영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시중 은행 몇곳이 3월 초로 잡혀 있던 주총 일정을 3월 말로 연기시켰다.

은행 주총담당 관계자는 이사회 결정을 거쳐 안건을 주총에 건의해야 하는데 금감원과의 조율이 아직 덜 이루어졌다며 금감원의 권고안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행추위 폐지가 행장 선출을 은행에 자율적으로 맡기기 위해 마련된 법개정이라면 금감원이 주총 시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은행장 만기를 맞은 은행 자체적으로 정기주총이 아니더라도 임시주총을 열어 정관을 개정해 행장을 선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 외환은행 이강원 행장도 임시주총을 통해 선임된 사례다. 굳이 정권말의 민감한 시기에 주총 시일을 연기하면서까지 정관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원래 폐지된 행추위 선출 방식은 전임은행장들의 입김으로 연공서열에 따라 은행장을 선출하던 기존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97년 1월부터 시작됐다. 이 방식의 최대 수혜자는 현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이다. 은행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의 강력한 추대로 행장에 선임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행추위 선출 방식이 기존 관행을 타파하고 신선한 바람을 몰고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폐지된 이유는 은행 인사에 정부의 입김을 배제하고자 실시된 제도지만 실제로는 행추위가 감독당국의 눈치를 스스로 본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은행장 인사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구설수가 끊이지 않자 금감위는 아예 지난해 4월 은행법 개정에서 행추위 구성에 관한 항목 자체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러나, 금감위의 이러한 법 개정 취지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은행장 선출에 관한 내부 권고안이나 기준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법 개정의 근본 취지를 완전히 무색케 만드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여전히 은행장 선출에 깊이 관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도는 것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의 자율성 능력을 아직 관료들이 믿지 못하는 것 같다며 법 따로 현실 따로인 상황을 씁쓸해 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