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전망 능력
정부의 경제전망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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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서 올해의 경제 성적표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지난주 발표한 올해 경제전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8%, 물가상승률은 4.0%로 잡혔다. 세밑 열흘 전에 발표한 수치이니 실상 전망치라기보다 확정치에 가깝다.

그런데 이 수치는 지난해 말 재정부와 한은이 발표했던 경제전망과는 상당히 어긋나 있어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당국의 경제전망 능력에 적잖은 흠집이 난 모양새다. 정부의 당초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GDP 증가율은 5% 안팎으로 그야말로 장밋빛 전망을 내놨었다.

민간 연구기관들이 하나같이 3~4% 대의 저성장을 예고할 때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자부심이 충만한 기획재정부 관리들이 설마 그만한 능력이 없어서 고성장을 예상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국내에서 가장 전문적인 인력풀과 예측기법을 확보하고 있다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아닌가.

따라서 경제성장에 목매단 정부의 희망사항을 거부하지 못하고 정치적 목표에 맞춘 전망치를 내놨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 전문가 집단으로서는 매우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행동이라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정확한 전망치는 안내놓느니만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에서는 민간연구기관들도 모두 전망 오류를 보였다. 삼성경제연구소 2.8%, LG경제연구원 3.2%, 한국경제연구원 3.0%로 저마다 GDP 상승률에서 1%p 낮은 물가상승률을 예상했다. 한국은행이 3.5%로 그나마 가장 근사치를 내놓은 셈이 됐다. 한국은행이 고성장에 따른 고물가를, 민간연구기관들은 저마다 저성장에 따른 저물가를 자연스럽게 전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정부는 GDP 상승률 5% 내외에 물가상승률 3% 내외로 참 턱도 없는 전망치를 내놨었다. 고성장 저물가의 야무진 꿈을 꾼 셈이다. 과연 이런 목표치가 실현 가능하다고 믿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나마 물가상승률은 통계청이 최근 소비자물가 항목을 수정하는 바람에 수정 전 예상치보다 0.2% 이상 낮아진 것이라 하니 물가에 관한한 국내 어느 전망치도 믿을 게 없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 전체가 백일몽을 꾼 한해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득해 나가도 시원찮은 마당에 터무니없는 고성장의 꿈을 꾸게 한 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들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지난 연말의 어떤 상황을 봐도 고성장의 전망을 내놓게 할 경제적 근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는 점에서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해 말이면 세계 경제의 전망도 어두웠다.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진도 가라앉지 않았었다. 반면 이미 유럽의 재정위기도 서서히 감지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출이 썩 잘될 것처럼 호도했다. 스스로의 눈을 가린 것인지 국민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딜 봐도 터무니없는 기대였었다. 세계 경제 전망이 잿빛인데 무슨 근거로 수출이 잘되고 덩달아 수출기업도 왕왕 잘 돌아가 취업도 잘되고 국민 소비도 늘 것이라 봤을까.

물가상승률만 해도 그렇다. 물가는 오르고 대다수 국민들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거나 후퇴하는 중이다. 2010년에 억대 연봉자가 42.3%가 늘었다니 올해도 얼마나 늘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봐야 전체 근로자 중 비율은 2%에도 못 미친다. 소수의 소득이 늘어봐야 내수산업에는 아무 보탬이 안 된다. 그런 사실은 덮고 전체 국민소득 얼마 는 것만 떠들어봐야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양극화가 무서운 것이다.

금주 중에 내년도 경제전망이 또 나올 것이다. 또 이런 터무니없는 전망을 내놓을 것인가. 대통령선거와 총선까지 있는 해이니 또 어떤 정치적 이해에 매달려 경제전망을 내놓을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세계 12위니, 13위니 하는 경제대국이라고 떠드는 나라에서 정책 당국의 경제전망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낯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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