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에 춤추는 세계
신용등급에 춤추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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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전성시대다. 세계 경제가 그들 손 위에서 널뛰고 있다.

신용등급 상위권을 점하고 있던 세계 각국이 유럽에서 시작해 미국, 일본까지 재정 불균형 문제로 인한 국가신용등급 하락이 줄을 잇고 있다. 국가경제가 이제 하나의 자본 단위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즉, 일개 국가는 세계를 넘나드는 자본의 투자대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4일에는 피치가 이메일 성명서를 통해 포르투갈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로 한단계 하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즉, 포르투갈은 투자등급에서 밀려난 투기등급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 발표 이후 포르투갈 국채값은 떨어지고 있다.

무디스는 이미 지난 7월에 포르투갈의 등급을 투자적격인 Baa1 등급에서 투자부적격 등급 수준인 Ba2로 강등했으며 S&P는 그보다 앞선 지난 3월에 기존 A- 등급에서 BBB로 하향조정한바 있다.

문제는 신용등급 하락이 포르투갈 수준의 국가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신용평가사들은 올해 들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주요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평사는 23일 미국, 프랑스, 유로존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거론한데 이어 24일에는 일본의 신용등급 하향조정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영원한 AAA급으로 여겨지던 미국은 이미 지난 8월 AA+로 강등된데 이어 추가 강등의 경고를 받았다. 무더기 경고 대상에 포함된 미국은 이미 이제까지 보여줬던 초강대국의 면모를 잃어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일본 역시 추가 강등의 시기가 임박했다는 사인이 나오고 있다. S&P의 고위관계자는 “오늘 당장 일본의 신용등급을 강등하지는 않겠지만 S&P가 그런 조치를 내릴 시기가 가까워졌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은 그 파장이 더욱 크다. 17개국이 가입돼 있는 유로존의 신용위기는 해당 국가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유럽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평사들이 이런 조치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유로존 국가 중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핵심국가들로 전이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런 무더기 발표를 통해 각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가시적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각국의 정치권이 무능하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까지는 어떻든 자본이 국가 위에서 힘을 행사하는 모습을 실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다. 대중에게는 그저 개별 자본이 자기 이익을 위해 로비를 하거나 정책의 이면에서 활동한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것도 눈 밝은 소수에게만 감지된 것이다.

그동안에도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신용평가로 해당 국가를 일희일비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들이 세계 경제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대중들로서는 그런 진면목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지금도 역시 그런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투자 자본을 위한 투자 대상 신용평가를 하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힘과 그 힘을 쏟는 방향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마르크스의 사회구조론이 지적한 현상이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마르크스는 한 국가 내에서 자본과 정치체제 나아가 국가체제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었지만 지금 세계는 초국적 자본의 이익에 각개 국가가 적합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시대가 되어 그의 이론을 실현시키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자본의 힘이 극대화될수록 세상은 그가 우려하던 모습을 닮아가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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