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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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사람을 구하는 일과 기업을 보호하는 일 가운데 정부는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근래 정부가 보인 몇몇 사례들을 보면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지난 10일 타결된 한진중공업 사태나 아직도 인도에 다섯 달째 발이 묶여 인질 아닌 인질 생활을 한다는 한국 국적의 화물선 블루스타호 선원들의 사례를 보면 정부에게 중요한 것 중에 ‘사람’은 아예 항목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경우 11개월간의 기나긴 갈등을 거치는 동안 정부가 한 일은 노조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시도밖에 없었다. 그러다 간신히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루고 잠정 합의안에 대한 노조의 찬반투표를 앞둔 시점에서도 느닷없이 300일 이상 크레인에서 고공시위를 지속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체포하겠다며 3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위협을 가하는 터무니없는 일을 벌였다.

이미 노사가 합의를 이루어가는 터에 그 정도면 명백한 정부의 월권이었다. 노`사간에 그동안 있었던 민형사상의 고소문제 등도 쌍방이 다 취소하기로 하는 등 모처럼 만의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정도를 넘어 공권력이 국민들을 향해 시위를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정부가 한편으로는 인도 영해상에 5개월째 묶여있으면서 제대로 입항도 못하고 전원도 끊긴 선박에 갇혀 지내는 블루스타호의 선원들에 대해서는 ‘민간기업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고 외면하고 있다.

이 배는 이미 전기가 끊기면서 식품이 부패해 선원들이 굶주리고 해충과 질병에도 시달리는 데 식품공급도 제대로 안되고 질병치료도 못 받는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도 회사가 부실해서인지 고장 난 선박의 수리는 고사하고 억류중인 선원들의 급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블루스타호는 화물을 싣고 인도 서북부 캔들라 항구로 들어가려다 고장이 너무 심하다는 이유로 입항을 거부당한 채 억류상태가 됐다. 한국인 6명과 인도네시아인 7명인 선원들은 급여조차 제대로 못 받으니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인도 현지법상 최소 4명은 배에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선원들이 배에서 내릴 수도 없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든 자국민이 이 정도 상황에 처했으면 정부가 최소한 ‘사람’을 먼저 구하고 해당 회사에 비용청구를 하든 별도의 후속조치를 하든 하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에 합당해 보이지만 이럴 때 정부는 제3자로 물러나 앉는다.

노사가 합의과정을 밟아가는 중에 경찰력을 동원하는 정부와 외국 항구 밖에서 화물선에 갇힌 채 몇 달을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자국민조차 외면하는 정부는 같은 정부인가, 다른 정부인가.

블루스타호 선원들의 상태는 ‘민간기업’의 문제라고 손 놓기 이전에 자국민의 인권 문제임을 굳이 외면하는 속내가 무엇인지 안타깝다. 북한 인권을 말하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이 밖에서 저토록 비참한 상황에 처하기 전에 손을 쓰는 모습부터 보여줘야 ‘인권’ 얘기도 진정성 있게 들리지 않겠는가.

한때는 달러벌이의 첨병이라는 이유로 베트남 참전 군인과 비교되며 외항선원들을 추켜세우기도 했던 대한민국, “참 많이 컸다”고 해줘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하긴 같은 피랍 선박이라도 뉴스 비중을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것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시기 피랍상태에 있던 삼호주얼리호와 금미호의 구출 문제에 대한 정부의 영 다른 태도를 비난하는 소리도 있었다.

‘미국 따라 하기’의 진수였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은 또 다른 피랍선원들인 금미호 선원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기도 했으니 '정부의 잣대는 그저 입맛대로구나' 치면 그뿐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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