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오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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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리스 문제는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정긴축 등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에 붙들린 그리스가 재정긴축에 반대하는 국민대중의 강력한 반발을 돌파하는 방법으로 불쑥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발표해 그리스 지원을 준비 중이던 다른 유럽 국가들을 화나게 했다고 며칠 떠들썩했으나 이 글을 쓰는 동안 여야 합의로 국민투표는 철회됐다는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대중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단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한 기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얼마나 더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이 지속될지, 혹은 악화될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것은 그리스로만 끝나지 않을 세계적인 재정위기 문제다. 당장 재정위기가 가시화된 스페인과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다. 프랑스도, 미국도 죄다 문제다. 어디 그뿐일까.

몇몇 나라에 불어 닥친 재정위기가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인 것은 증권시장이 요동치고 당장의 환율이 불안정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각국의 국채 규모가 커지면서 많은 정부가 소수의 민간인 수중으로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이 됐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수준이 아니라 정부의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아직은 각국 정부가 서로 다른 나라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비중이 적지 않은, 정부 민영화의 진행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단계 정도로 보이지만 지금보다 더 진행되면 그때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를 토대로 한 세계체제는 새로운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도 과연 인류가 이제까지 더디지만 방향을 잃지 않고 발전시켜온 민주주의로의 전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왜 인류는 지금 이런 역사적 퇴행을 초래할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까. 그 이면에는 ‘부자’에 대한 대중의 환상적인 선망과 국가의 미신에 가까운 신뢰가 자리잡고 있다. ‘부자’는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고 믿음을 얻음으로써 그 부자를 부자이게 하는 돈은 장애 없이 넓은 세계를 굴러다니며 푼돈들을 흡수해갔다. 그 커진 자본이 몇몇 모이면 나라 하나쯤 살 수도 있는 체제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그동안 실감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본이 그런 우리의 몽롱한 의식을 깨우고 있다.

지금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위기라는 공통점 외에도 오랜 기간 심각한 부패문제로 국민들이 시달려왔고 그만큼 빈부격차도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감세조치가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나팔불던 한국 언론은 시치미 뚝 떼고 못들은 체 한다.

지금은 사망했지만 한동안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던 선박왕 오나시스, 그런 세계적 부자의 나라 그리스이기에 얼마나 궁핍한지 우리는 잘 몰랐다. 그렇기에 국가부도 위기를 맞고서도 재정긴축에 반대해 총파업을 단행하고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 저들의 사정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마피아가 검찰총장을 살해하고도 조직이 나날이 커간다는 이탈리아에 대해서도 우리는 로마시대의 유적과 밀라노의 패션 따위로만 알 뿐 그 이상 알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스페인에 대해 대중적으로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작해야 투우 정도일까. 플라멩고 정도까지는 안다고 해도 그 이상 관심가질 무엇도 없다.

그리스도, 스페인도 오랫동안 군부독재체제를 겪다가 뒤늦게 민간정부를 갖게 됐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겪은 나라들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 부자들의 탈세관행조차 정부가 저지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부자들의 기득권이 공고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기득권은 갈수록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되고 가난한 자들의 절망은 사회발전을 지체시킨다.

그리스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뿐 이런 현상은 2차 대전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온 데다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그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닥쳐올 변화가 민주주의의 위기일까, 자본주의의 종말일까.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어떻게든 현행 체제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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