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을 위한 불편한(?) 변명
[기자수첩] 은행을 위한 불편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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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종용기자] "과거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사들은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김석동 금융위원장)" "서민을 위해 수수료를 낮추는 등 실질적인 기여를 해야한다(권혁세 금감원장)"

은행권에 대한 수수료 인하 여론이 거센 가운데 금융당국 수장들까지 시중은행들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당국까지 나서자 은행들도 수수료 인하 작업에 착수했다. 시중은행들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송금과 인출 수수료를 절반씩 인하하는 개선책을 마련한 것이 그 예다. 최근 카드사들도 중소가맹업체와 금융당국의 줄기찬 요구에 못이겨 수수료율을 일제히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여론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인해 은행 영업방식이 손바닥 뒤집히듯 뒤바뀌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거둬들인 이자와 수수료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수수료 체계는 금융당국이 마련한 정책적 산물이다. 금융당국은 과거 은행권의 획일적인 수수료 체계를 문제 삼아 각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용하도록 정책을 바꿨다. 각 은행마다 수수료가 상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수료가 금융서비스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점에서, 금융사들의 간련 서비스가 점차 개선돼 온 것도 사실이다. 금융사들이 고객유치를 위해 경쟁에 나서면서 발생한 긍정적 효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수수료가 천편일률적인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은행들로서는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서비스 역시 동일한 수준으로 낮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카드사들의 수수료 인하 방침을 놓고 기존 카드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맥락이 같다.  

은행들 역시 수수료 인하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불만이 적지 않다. 

특히, 은행들이 올해 사상최대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얘기 역시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지분매각 등 일회성 이익이 반영된 데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부터 쌓아온 충당금 부담이 줄어든 데 따른 '기저효과'가 크다는 설명이다. 

수익이 안나올 때는 '장사 못한다'고 욕먹고 수익성이 좋아지면 '서민들 주머니 턴다'는 식의 비판에 대한 푸념과 함께 여론에 과도하게 호도되는 측면이 있다는 볼멘 소리도 들린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이번 수수료 인하가 향후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까지 나타내고 있다. 9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로 은행들의 대출옥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 역시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反 월가' 시위에서 촉발된 고연봉 논란 역시 국내 은행은 사정이 다르다며 하소연이다. 대다수 은행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연봉을 동결시켜 온데다, 이후 입사한 신입직원들은 20% 깎인 월급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 임원급들의 경우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고 있는 반면, 신입직원을 비롯한 계약직 텔러의 경우 연봉이 2000만원 안팎에 불과한 실정이다. 은행권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反 월가' 시위가 서방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춤거리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결국, 금융당국으로선 여론에 편승한 마구잡이식 '은행 때리기'에 앞장서기 보다는 체계적인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추후 은행 수익성이 나빠지면 그 때 가서 또다시 수수료 인상을 검토하는 식의 '땜질식' 처방에 나서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은행들 역시 수수료나 예대금리 등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라는 여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금융상품과 획기적인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만 수수료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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