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받은 서민
버림 받은 서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은행이 9월 기준금리를 동결함으로써 석 달째 금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고공행진 중인 물가문제에 등을 돌린 것이다.

폭등하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연속 동결한 한국은행은 같은 날 올해의 물가목표 4%의 수정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기는 했으나 물가 상승폭은 축소될 것이라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함께 내놨다. 그러나 한은의 이런 분석은 당국의 희망사항인지 혹은 계속되는 금리동결을 합리화하기 위한 궁색한 해명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하루 전날 ‘대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물가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 KDI의 분석과도 어긋나 어느 쪽에 더 신뢰를 둬야 할지 정보소비자들로서는 곤혹스럽다.

물론 물가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을 한은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물가보다 금융안정이 우선이라는 말이 단지 변명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대출을 목 끝까지 받은 개인`가계는 물론 중소기업들도 금리인상을 감내하기 어려울 터이고 독과점 품목 위주로 금리인상을 또 다른 가격인상의 빌미로 삼을 위험성이 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장에 목맨 정부 요구에 끌려 다니느라 계속 금리인상을 미루어온 결과로 오늘날 금융 불안의 요인을 더 키운 한은에 동정을 보내기는 어렵다. 세계 각국이 금리 인상을 서두를 때도 한국만 유독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니 말이다.

계속되는 저금리 상황은 가처분소득의 실질적 감소 상태로 몰린 서민들을 긴축 대신 빚을 늘리는데 크게 주저하지 않도록 유인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을 테고 그런 바탕이 주택 매매 부진에도 불구하고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기능을 했을 터이다.

요란스레 가격 하락을 떠들지만 집 없는 서민들이 보기에 주택가격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그런 만큼 가계당 가처분소득이 확대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빚에 전전긍긍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소득과 집값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거리에 절망한다.

어떻든 개인과 가계가 빚으로 물가에 맞서도록 내몬 결과가 금융 불안의 요인이 된 것이고 그 끝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지난해의 미국과 십 수 년 전 일본의 예로써 충분히 경험해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IMF 쇼크에서 탈출하기 위한 긴급조치로 취해졌던 소비확대 정책이 결국 카드대란을 야기한 경험으로부터도 배운 것이 없는 현 정부다.

그래서 앞으로 닥칠 문제들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지난 과오만 되씹기에는 현재 닥친 상황들이 참으로 만만찮다. 그리고 현 정부와 관료들, 또 이 사회의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는 이들의 화석화된 성장지상주의 사고방식이 그런 상황을 극복해낼 만하다는 믿음이 없어서 더 걱정스럽다.

가파른 전`월세가 상승은 다방면에서 그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매매 활성화’를 명분으로 부동산정책을 주물러 규제는 물렁해졌다. 그 결과 소위 투기지역들을 중심으로 불안한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정부 발표 덕분인지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매에 가까운 매도세도 척척 받아내는 강남의 손 큰 개인투자자들도 언제 또 부동산 시장을 휘저을지 알 수 없다. 예전부터 늘 그래왔듯이.

어차피 수익전망이 더 좋은 곳으로 돈이 몰리는 현상은 불가피하다. 그럴수록 물가는 더 오르고 이미 클대로 커져버린 뭉칫돈들은 푼돈을 고물 삼아 덩치를 키운다. 서민가계는 더 찌들어가고. 그런데도 지금 정부는 그런 위험 속으로 이 나라 경제를 몰아가고 있다.

일단 눈길을 발 앞으로 돌려 봐도 이미 늘어난 빚에 당장 높아진 물가는 가계의 소비지출을 억압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긴축의 그림자는 이미 서울 변두리지역까지 깊숙이 드리워졌다. 내수산업 전반이 앞으로 그 영향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문제를 ‘옳게’ 고민하고 있을까? 알 수가 없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