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냐 고추장이냐' SC제일銀 노사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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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보름째, 전국 43개 지점 영업 중지 
성과제 놓고 英 금융사 vs 韓 금융노조

[서울파이낸스 이종용 채선희기자] 성과급제 도입에 반발한 SC제일은행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지 보름이 지났지만 노사 양측은 여전히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총파업으로 인해 대체인력으로 영업점을 운영해왔던 은행은 11일부터 전체 영업점의 11%인 43개 영업점의 영업을 정지하기까지 이르렀다.

SC제일은행 노사 갈등의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성과급제 도입이지만, 결국 성과주의 경영을 동력으로 하는 외국계 은행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억눌려 있는 한국 금융노조의 충돌로 풀이되고 있다.

◇잇단 협상 결렬, 이유는?

협상 테이블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달 27일부터 노조의 총파업으로 영업점 운영 차질이 불필요한 은행측은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을 계속해왔다.

지난 7일 리차드 힐 SC제일은행장은 노조원들이 머물로 있는 속초 콘도를 방문해 노조 측 간부와 6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협상 타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은행장과 노조위원장의 만남으로 총파업이 해결 국면에 들어서겠다는 전망이었지만 협상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나버렸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해부터 끌어 온 임금단체협상 때문이다. 노사 공동으로 성과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더라도 임단협과 성과제 도입 중 무엇부터 먼저 처리하느냐를 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노조 측은 "성과급제 TFT의 성격은 성과급제 도입을 전제로 하느냐, 아니면 성과급제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팀이 되느냐에 따라 노사 간의 이견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측은 "노조의 주장을 수용해 성과제 TFT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지만 임단협 우선 처리란 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노조는 은행측이 임단협을 볼모로 성과급제 도입을 추진한다며 반발하고 있고, 사측은 노조가 임단협 우선 처리를 핑계로 성과급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며 팽팽한 갈등 상황을 막고 있다.

◇"통역가 둬야하는 노사 협상"

외국 금융사와 한국 토종 노조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SC제일은행은 모(母)회사인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경영전략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SC제일은행 노조지부는 상급단체인 전국금융노조의 행동범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SC그룹의 성장 원천은 한마디로 '성과주의'다. 이 그룹은 아시아, 아프리카 및 중동지역 금융시장에 진출해 그룹 수익중 90% 이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전형적인 글로벌 금융회사다.

영국에는 본사 하나만 두고 있고 다른 국가에서 성장점을 찾아야 하는데, 국제적으로는 당연히 인정받은 성과급제가 한국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불만일 수밖에 없다.

힐 은행장도 한 외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으로 더 많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부족하기 때문"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SC제일은행 노조의 뿌리인 전국금융노조도 성과급제 도입만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은행 신입사원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등 불만을 감수했는데, SC제일은행이 성과급제 카드를 꺼내자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노조는 성과주의로 인한 과당대출 경쟁이 합법적인 구조조정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은행에 성과주의보다 공공적 측면을 더욱 요구해온 국내 정해왔던 한국적 현실과 연결된다.

외국인 경영자와 노조의 고질적인 소통 문제도 파업 장기화에 힘을 실고 있다.

한 노조 간부는 "은행장과 노조가 여러번 협상을 가졌지만, 통역가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해야만 했다"며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나눠도 진정성이 통할까 말까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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